부르봉 뽀앵튀 (부르봉 포인투. Bourbon Pointu) 커피는 Coffea arabica의 돌연변이에서 얻은 커피의 일종으로, 1711년 인도양에 위치한 프랑스령 라 레위니옹(La Réunion) 섬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동인도회사의 오피서 하르단쿠르 (Hardancourt) 씨가 처음으로 기술했다. 첫 번째 씨앗은 예멘에서 도착한 것으로 믿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살아있는 커피 나무 종자의 외부 반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던 예멘 왕이 프랑스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서, 왕이 그에게 준 것이라고 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왕의 귀에 생긴 농양을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위니옹 섬
레위니옹(La Réunion) 섬은 마스카렌 제도에 속한 섬으로, 동아프리카 서인도양에 있는 프랑스의 해외 데파르트망이다. 영어로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코르시카를 포함한 모든 프랑스의 해외 영토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마다가스카르 동쪽으로 약 720km, 모리셔스 남서쪽으로 176km 떨어져 있다. 길이는 남북으로 64km, 너비는 동서로 48km로 거의 타원형으로 생겼으며, 면적은 제주도의 1.4배 정도이다. 인구는 86만6천명 정도이며, 주민은 절반이 크레올인, 백인 1/4, 인도계 1/4, 중국계 3% 등이다. 종교는 가톨릭이 86%이다.
레위니옹 섬은 화산섬으로, 지난 365년간 관측된 화산 분출이 300회가 넘고 현재 진행중인 활화산이 있으며, 이 섬 자체가 300만년 전의 화산활동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 섬을 해안선, 활화산, 휴화산, 열대 우림이 덮고 있다. 이 고립된 모래와 바위의 작은 곳은 커피에서 가장 귀하고 널리 재배되는 나무 타입 중 하나에 유전적 병목 현상이 발생할 것 같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의 존재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지는 이 섬은, 16세기초 포루투갈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Dina Morgabine ('Western Island')으로 기록된 것 같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선원과 어부들이 국제적 해양무역이 오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탐험가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고 문서화되었다. 1507년경 포루투갈 탐험가 디오구 페르난데스 페레이라 ((Diogo Fernandes Pereira)가 발견했다고 한다.
17세기에 이곳을 주장하고 정착한 사람은 프랑스인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노예가 된 마다가스카르인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 브루봉 왕조의 이름을 따서 섬의 이름을 Bourbon (“bore–bon”으로 발음)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기 1공화국 때에 레위니옹으로 명명되었고 ,나폴레옹 시대엔 보나파르트 섬으로 불렸다. 왕정복고 후 다시 부르봉 섬이 되었으나, 1848년 2월 혁명 후 2공화국 시대에 다시 레위니옹 섬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이전에 부르봉(Bourbon)이라고 불렸던 레위니옹(Réunion) 섬에는 커피 농장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18세기에 커피는 코코아, 사탕수수, 면화와 함께 열대 지방에서 프랑스로 수출된 최초의 제품 중 하나였다. 과학자 시외르 르로이 (Sieur Leroy)는 이 섬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실제로 예멘으로부터 도입된 아라비카 커피의 자연 변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커피는 루이 15세와 왕비는 물론, 작가 볼테르나 화가 프라고나르와 같은 저명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되었다. 부르봉 포인투의 황금 시대는 18세기 말에 강력한 전염병(녹병)이 실제로 모든 커피 농장을 파괴했을 때 끝났고, 반세기 이상 동안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극소수의 작은 농장만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2002년에 섬 지역 협의회가 주도하여 이 작물을 복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기금을 모금했다. 해당 프로젝트에서 국제농업연구개발협력센터 (CIRAD)와의 협력은 이렇게 시작됐다. 2007년에 Bourbon Pointu 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곧 이 귀중한 커피의 첫 번째 효과적인 수확의 상업화가 현실이 되었다.
예멘으로부터 커피 나무의 전래
초기에 커피에 대한 집착이 네덜란드와 맞먹었던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작물에 접근하는데 열심이었다.
1670년 프랑스 Dijon에서 커피 재배 시도가 실패한 후 [Ukers], 네덜란드인은 18세기 초에 파리 식물원에 자바산 Typica 나무를 선물했다. 그 나무는 프랑스인들이 Martinique와 Haiti로 가져온 서반구에서 재배된 최초의 커피 중 일부의 씨앗이 될 나무였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인도양의 식민지 섬에서 재배할 작물을 찾을 때 원산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 자신의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는 최근 소유권을 주장한 Bourbon 섬에 커피가 유망함을 파악하고 수행단을 아라비아 반도로 보냈다.
R.L. Playfair의 『A History of Arabia Felix Or Yemen』은 초기 상호작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는 1708~09년에 처음으로 Yemen을 방문하여 그 이마메이트(Imamate)와 유럽 국가 사이에 자유 무역을 시작했다. 1712년 2월 14일에 시작된 두 번째 탐험은 당시 거의 80세였던 이맘 알 마흐디 무함마드(Imam Al-Mahdi Muhammad)를 만났고, 그는 프랑스인들을 관대하게 맞이했다. “매우 단순한 복장”과 “가장 규칙적인 삶”으로 묘사된 이맘의 장관(pomp)은 그의 행렬에 1,000피트의 병사들, 200명의 기병, 그리고 그의 계승자들이 포함된 금요일 모스크 방문으로 제한되었다. 그는 아들들과 함께 “금 자수로 장식한 녹색 비단 캐노피 아래” 도착할 것이다. 프랑스 동인도 회사 오피서 Louis Boyvin d'Hardancourt의 회고록에 따르면, Imbert라는 이름의 예멘에 주둔한 프랑스 에이전트가 이맘과의 좋은 관계 덕분에 유럽 국가를 위한 커피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Al-Mahdi는 프랑스인들이 귀 농양(abscess of the ear)으로 인한 고통을 덜어준 데 대해 공로를 인정한 것 같다. Imbert는 Al-Mahdi의 축복을 받아 예멘 들판에서 60그루의 나무를 얻었다 (살아 있는 종자는 예멘에서 수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715년 9월 25일, 나무들이 Réunion으로 전달되었다. 여행에서 살아남은 생존체는 20그루 뿐이었다. Dufresne d'Arsel의 지휘 하에 있는 "Le Chasseur" 선박이 Réunion 섬에 도착하면서 상황은 긍정적으로 발전했다. 그는 예멘의 모카(Moka)로부터 나무들을 운송해온 것이었다. 처음에 남겨진 60그루의 나무들 중, 생드니의 마틴 씨에게 맡겨지고 나중에 정착민들에게 씨앗이 배포된 한 그루를 제외하고는 도착하자마자 25개만 남았으나 빠르게 시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Yemen으로부터 Coffea arabica를 가져오려고 서둘러 가다가 토착종 (native species)을 거의 간과했다. Hardancourt는 1711년에 이 "열매가 가득한 10~12피트 높이의 야생 커피 나무"를 주목하고 품질 평가를 위해 파리로 보냈다. 잠시 동안 작물 재배가 장려되었지만 품질이 좋지 않았고 (예멘에서 들여온 나무와는 대조적으로) 토종 커피 수입에 대한 분쟁으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했다. 수입법의 관점에서 모든 커피를 동일하게 간주하여 해결된 이 분쟁은, E. C. Spary의 『 Eating the Enlightenment: Food and the Sciences in Paris, 1670-1760 』에 따르면, 무심코 East Indies에 걸쳐 Bourbon 커피를 “Mocha”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도록 하였다. 그 섬의 토종 나무들은 1783년까지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인근 섬 Mauritius (이 섬에서도 자생함)의 이름을 딴 Coffea mauritiana는 수확량이 적은 원뿔 모양의 나무이다 ; 가끔 커피 열매를 맺는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나무이다. 자연적으로 겸손한 이 나무는 1720년대 이후 무시되었고, 적어도 약 100년 후 섬에 도입된 아라비카 나무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가보 나무가 글로벌 주목을 받다
Réunion의 수도인 생드니(Saint Denis)에 거주하는 두 형제의 보살핌 속에 남겨진 새로 도착한 아라비카는 거의 죽을 뻔했다. 원래 나무들 중 하나만 살아남아 자손을 낳았다. 1718년에 섬에 있던 유일한 아라비카 나무였던 이 새로운 Bourbon 나무는 100개가 조금 넘는 묘목을 생산했으며, 1720년에는 약 7,000그루의 새로운 나무로 늘어났다.
이 무렵에는 커피 노동 캠프가 섬의 주요 경제 원동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이후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노예가 된 마다가스카르인과 아프리카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마다가스카르, 서부 및 동부 아프리카, 인도 출신의 사람들은 유럽이 소비할 고급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고국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1769년 Jacques Henri Bernardin de Saint-Pierre는 『Voyage A L’llsle de France, A L’Isle de Bourbon, Au Cap de Bonne-Esperance (프랑스 섬, 부르봉 섬, 희망봉 여행)』에서 노예 제도에 대한 프랑스 최초의 저명한 비판 중 하나를 썼다. 그는 Réunion에서 “유럽의 행복에 커피와 설탕이 필요한지 여부는 모르지만, 이 두 작물이 세계 두 지역의 불행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1750년대부터 그 세기 말까지 노예 노동자들의 노동에 힘입어 Bourbon 섬은 커피 생산 붐을 누렸다. 그러나 새로 재배된 커피 품종은 프랑스에서 소비하기 위한 수출을 제외하고 꽤 오랫동안 섬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이 무렵, 프랑스 커피하우스 문화는 17세기 중반의 호기심에서 상징적인 파리 살롱으로 천천히 발전했으며, 처음에는 Café de Procope (1686년 설립)로 대표된다. 이 살롱은18세기 “많은 유명한 프랑스 배우, 작가, 극작가, 음악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고”, Ukers에 따르면 혁명가들의 모임 장소로 발전했다. 혁명 이후, 커피하우스는 문화 센터에서 레스토랑과 유흥 장소로 바뀌었고, 그 수는 파리에서 계속 증가하여 도시 인구가 100만 명에 가까워지면서 19세기 중반에는 3000개 이상에 이르렀다.
유럽에서 커피하우스의 인기는 널리 연구되어 왔지만,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 특히 카페에 자주 갈 수 없었던 여성의 경우 18세기와 19세기에 커피 준비가 종종 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Ukers에 따르면, stovetop 위에서 콩을 볶기 위해 "광택을 칠한 토기(varnished earthenware)" 커피 로스터를 사용했다. 탁상용 그라인더와 벽걸이형 그라인더도 “너무 흔해서... 개당 1달러 20센트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천을 통해 추출되고 여과되었다. 1763년에 파리의 한 양철 세공인(tinsmith)은 “추출을 위해 플란넬 자루를 사용하는 항아리를 발명했다.” 프랑스의 초기 금속 여과 및 퍼콜레이터 타입의 장치가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한편, Réunion의 Bourbon 나무는 한동안 문자 그대로 가보(heirloom)의 지위를 누리며 세대를 거쳐 손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식물 육종가와 정원사들은 비상업적인 과일과 채소를 지칭하기 위해 “heirloom”을 사용한다. 따라서 가보 식물은 종종 가족 가보처럼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 대농업(macro-farming)에 대해 사적인, home-garden 반응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의 Bourbon의 세계적인 사용을 포함하여 상대적으로 소수의 현대 커피 품종이 자격을 갖추게 된다.)
Bourbon의 가보(heirloom) 지위는 1800년대 중반에 그 나무가 Java의 Typicas에 대한 화려한 대안으로 갑자기 세계 무대로 폭발하면서 바뀌었다. 물론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Bourbon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왕실이 전복되었고, 1848년에 섬의 이름이 영구적으로 Réunion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1859년에 그 이름을 딴 섬으로부터 브라질로 처음 들여온 Bourbon 나무는 간단한 이유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그 나라의 노후된 Typica 나무에 비해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 나무들은 음모와 불륜(illicit affair)으로 가득 찬 이야기 속에서 브라질에 왔다.
때는 1727년, 유럽은 서반구에 거점을 확보하고 새로운 식민지에서 현금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커피는 남아메리카 북부 해안에 소개된 지 불과 10년이 조금 넘었고, 프랑스인, 영국인, 네덜란드인은 각각 현재 Guyana (영국령), French Guiana (당시 Cayenne), Surinam (당시 Dutch Guiana)의 영토를 주장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의 많은 부분을 빼앗았지만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커피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
Francisco de Mello Palheta 중령은 최종적으로 포르투갈 식민지를 위한 식물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국경 분쟁을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French Guiana를 여행하던 de Mello Palheta는 주지사 Claude Guillouet d’Orvilliers의 아내인 마리 클로드 드 비크 드 퐁지보 (Marie-Claude de Vicq de Pontgibaud)를 유혹했다. 그가 떠날 때 그녀는 그에게 꽃다발을 주었는데, 그 안에는 생존 가능한 씨앗이 담긴 커피나무 가지가 숨겨져 있었다. 따라서 브라질은 19세기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원주민의 노동과 20세기 산업화에 힘입어 세계 커피 지배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현재 브라질은 전 세계 아라비카 공급량의 거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익어가는 커피 체리에는 붉은색 과일이 일반적이지만, 소수는 잘 익은 색상으로 노란색을 나타낸다 (주황색/분홍색 범위의 희귀한 열매도 있다). 브라질의 독특한 떼루아와 관련된 이유로 현재 유명한 브라질의 Yellow Bourbon 나무(1930년에 처음 발견됨)는 비슷한 조건에서 자란 레드 품종보다 품질이 훨씬 더 좋아 매우 인기가 있었다. 최근 2019년에 브라질 라브라스 대학교의 저명한 커피 학자 Flávio Borém 박사가 주도한 논문에서 팀은 “[브라질의 만티케이라(Mantiqueira) 산악 지역에서] 마이크로 지역 제품으로서의 커피 품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서는 1,050m 이상의 고도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효과는 천연 레드 커피 열매 품종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표준 붉은 열매 Bourbon 나무가 아메리카 대륙을 통해 발전하여 종종 원래의 Typica 밭을 대체했다. 레위니옹의 프랑스 스피리탄 선교사들(French Spiritan Missionaries)도 1868년에 이 나무를 잔지바르(Zanzibar)와 탄자니아 중부 해안 마을인 바가모요(Bagamoyo)로 가져갔다. 여기에서 부르봉 나무는 동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수많은 지역적 반복과 셀렉션으로 발전했다.
Laurina 커피 나무의 등장
Bourbon 나무는 일반적으로 잎이 상대적으로 좁은 식물인 Typica보다 모양이 더 둥글고 관목이 더 많다. Typica는 가느다란 가지(spindly branches)를 키우고 卵形(ovoid) 열매와 씨앗을 생산한다. Bourbon은 잎이 더 넓고 球形의 (spherical) 과일을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재배 위치에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19세기 첫 10년 초, 식민지의 교수이자 수석 약사인 E. Rauol의 『Culture du Caféier』에 처음 기술된 바와 같이, 레위니옹에서는 짧고 원뿔 모양의 나무가 예기치 않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각진 씨앗이 있는 달걀 모양의 열매를 맺었다. 재배자들은 그것을 (상상력이 없더라도) Bourbon pointu (“뾰족한(pointy)” Bourbon)이라고 부르고 재배하기 시작했다.
Pointu는 지역 재배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몇 가지 별명을 얻었다. 초기 경작자들은 재배를 위해 나무를 발견하고 분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Le Roy (결국 Leroy로 진화)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오늘날 이 나무는 아마도 Le Roy를 암시하는 "Laurina"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식물이 월계수(Laurel tree)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이 더 높다.
1771년 Ravine des Chèvres에 있는 Bourbon의 Pajot 씨 묘목장에서 전직 해군 장교였던 재배 책임자 Leroy가 그의 부루봉 아라비카 커피 나무들 사이에서 그와 형태가 전혀 다른 작은 나무를 발견했다. 그는 보통 상사의 착취를 감안하여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 나무를 제거하는 대신, 그것들을 따로 떼어 놓고 사유지 위에 심었다. 몇 년 후 그는 이 커피나무에서 잘 익은 체리를 수확하여 커피를 만들어 상사에게 맛보라고 주었다. 그는 그것에 감사하며 Leroy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것이 더 우수하다면 나는 그것을 갖고 있고 당신의 이름을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Pointu의 출처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이 섬에는 새로운 나무가 유입되지 않았는데, 한 세기 동안 형태학적으로 안정된 Bourbon이 어떻게 그렇게 극적으로 진화했을까?
추측이 난무했다. 섬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발견된 모리셔스 커피 종도 비슷하게 묘사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C. mauritius가 C. arabica var. Bourbon과 교배하여 뾰족한 하이브리드를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았다. 과학이 씨앗의 카페인 함량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추가 증거를 더했다: Mauritius는 자연적으로 카페인-프리이며, Bourbon pointu는 아라비카 커피 카페인의 대략 절반이 들어있다. William H. Ukers의 Tea & Coffee Trade Journal 1917년 1월호에서는 이 제안을 반복하여, 이 나무를 독립적인 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Bourbon Le Roy (Coffea laurina)는 때때로 다른 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작으며 높이가 8피트에 도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곡물은 작고 그러나 품질은 좋지만, 아라비카만큼 생산성이 높지도 않고 조숙하지도 않다. 유일한 장점은 그 나무들을 서로 더 가깝게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이 도출된 것 같다. 근본적으로 이는 이미 확립된 선례를 바탕으로 한 매우 합리적인 가정이다. 아라비카는 이전에 다른 Coffea 종과 교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자생적 이종간 하이브리드들에는 Timore hybrid을 생성하는 로부스타 교배와, 그리고 S228이라고 알려진 하이브리드를 낳는 C. liberica와의 교배가 포함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라비카 종 자체는 하이브리드이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로부스타 종과 천연적으로 카페인이 없는 C. eugenioides의 교배로 탄생한 하이브리드이다.
그러나 대안 이론이 등장했다. 1951년에 단순히 Advances in Genetics라는 중요한 유전학술 자료가 출판되었다. 외모에 비해 겉보기에 약간 더 많은 것으로 보아 Laurina는 Typica의 친척으로 선언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좀 더 작은 형태가 일반적이고 소위 “long berry" 종자 모양이 서구 시장에서 탐나는 에티오피아의 독립적인 종으로부터 도입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결정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Unraveling the origin of Coffea arabica ‘Bourbon pointu’ from La Réunion: a historical and scientific perspective”이라는 제목의 정말 사랑스러운 작은 논문이 2009년 초 과학저널 Euphytica (식물 육종 분야)에 출판되도록 승인되었고, Bourbon Pointu와 Bourbon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다고 상정한다.
팀은 섬의 많은 개별 나무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샘플이 필요하지만 문제의 게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DNA 지문 채취 도구인 Amplified Fragment Length Polymorphisms (AFLP)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을 완료한 후, 919개의 유전자 마커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결정했다. 확인된 유전자 마커들 중 918개는 “두 자손들 모두에 존재”했다.
두 나무 타입들 간의 계산된 유전적 거리는? 별로 없는 0.05퍼센트이었다. 이를 Typica와 Bourbon 간의 18.7% 차이와 비교하면, 두 나무들 모두 에티오피아의 작은 랜드레이스 셀렉션으로부터 유래하고, 둘 다 예멘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충분히 놀랍다.
그 논문은 “가장 유력한 가설은 La Réunion에서 ‘Bourbon’ 나무의 돌연변이가 출현하고, 이어서 순수 계통(pure line)으로서 선택 (selection)과 종자에 의한 증식이 뒤따른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Bourbon과 Pointu가 하나이고 같은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작고 뾰족한 콩들과 낮은 카페인을 함유한 이 재미있고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커피 나무의 출현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레위니옹에는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배되는 모든 아라비카 나무는 단 한 그루의 살아남은 부모에게서 유래함) 자가수분을 통한 번식으로 인해 열성 유전적 특성의 발현은 불가피했다. 둘째, 그러한 열성 특성을 나타내는 나무 (Bourbon pointu 나무)를 인간 경작자들이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번식하여 뾰족한 씨앗을 가진 원추형 나무들의 전체 개체군이 탄생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들의 사이클은 나중에 유리한 특성을 위해 선택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커피에서는 꽤 흔하다. 커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수백 가지의 바람직한 특성은 더 높은 수확량, 더 큰 체리, 질병에 대한 저항성 등 진화적 또는 농업적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Bourbon 나무에서는 놀랍게도 한 가지 돌연변이가 흔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짧은 나무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커피 생산자들이 Laurina를 자신의 영역에서 재배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커피 재배자이자 하와이 대학에서 열대 농업 및 토양 과학을 전공하는 Juli Burden은 두 개의 작은 Laurina 숲을 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다른 품종에 비해, 특히 습한 기후에서 자라는 속도가 느리지만” 여러 면에서 매우 정상적인 나무라고 말했다.
Burden은 “Laurina는 현재까지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친환경 구매자의 관점과 고객의 관점에서 모두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유게니오이드(eugenioides)와 같은 다른 알려지지 않은 품종이나 커피 종과 유사합니다.”
Luis와 Rigoberto Herrera 형제가 운영하는 콜롬비아의 무성한 Valle del Cauca 지역의 다중 농장 벤처인 Café Granja La Esperanza (CGLE)는 1헥타르가 조금 넘는 Laurina를 재배한다. 나무 수는 총 10,000그루가 조금 넘으며 La Esperanza와 Las Margaritas 농장의 두 부지에 나누어져 있다. CGLE의 영업 및 마케팅 이사인 Camilo Hadad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독특한 품종 재배에 대한 몇 가지 세부 정보를 제공했다.
일화로 Laurina는 별로 생산력이 좋은 나무는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Hadad는 “Laurina 품종의 수확량이 매우 높 다”고 말했다. CGLE의 추정 Laurina 체리 연간 수확량은 8,869kg으로 CIRAD의 평균 아라비카 밭에서 헥타르당 체리 생산량이 6~7톤으로 추정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이 품종의 조밀한 스페이싱 (dense spacing) 능력은 균형상 효율적인 나무가 된다. Hadad는 Laurina 체리를 수확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며 “체리는 매우 섬세하고 폭우가 내리면 체리가 부서지고 내부의 당분이 새어 나올 수 있으므로 수확하는 사람들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재빠르게 언급했다. 커피의 펄프를 즉시 제거하고 세척하면 깨지기 쉬운 열매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CGLE와 다른 많은 농부들은 “Natural Laurina가 일반 washed보다 더 빨리 팔릴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확자와 가공업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브루봉 뽀엥튀의 특성
부르봉 포인투는 수년 동안 알려진 품종이므로 아마도 이름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부르봉 포인투 커피는 Laurina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Leroy, Petit bourbon pointu, Smyrma, Marron 또는 Batard와 같은 이름으로 문헌에서 자주 인용된다. 과거에는 부르봉 포인투가 다른 종이었는지 아니면 종 간의 잡종인지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이 있었다. 처음에는 C. arabica와 C. mauritiana Lamarck 사이의 교배일 수 있다고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삼배체이고 버번 포인투가 열매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불임 식물이 이 교배에서 출현했을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배제되었다. 다른 저자들은 이것이 mokka × arabe 품종의 교배에서 유래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몇몇 다른 저자들은 부르봉 포인트투를 C. arabica 종의 돌연변이로 제한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는 데 동의한다. 브루봉 포인투 나무는 Typica 품종에 비해 크기가 더 작고 여러 개의 줄기와 크리스마스 트리와 유사한 원뿔형 모양을 갖고 있으며 가지가 빽빽하고 측면 가지가 훨씬 짧으며 잎이 더 작고 종자 열매는 밑 부분이 더 작고 원추형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식물학자이자 코스타리카 CATIE (Tropica Agronomic Research and Teaching Center)의 국제 커피 컬렉션 큐레이터인 Jorge León 박사는 Laurina 또는 Bourbon Pointu를 특징을, Typica 보다 하급식물로 절간이 짧고 가지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잎은 작고 좁으며 모양은 직사각형(측면이 약간 평행한 길쭉한 모양)이고 밑부분과 끝부분이 뾰족하며 색이 어둡다. 꽃의 크기는 보통이다. 이 품종의 가장 특별한 특징은 열매의 모양인데, 길이가 약 8~10mm로 길고 좁으며 끝이 뾰족하다. 종자도 또한 끝 부분이 좁고 날카롭기 때문에 Bourbon Pointu (뾰족한 버번)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1952년에서 1960년 사이에 Reunion 섬, 케냐, 카메룬에서 4개의 액세션들이 CATIE의 국제 커피 컬렉션에 도착했다. 그 이후로 이러한 자료는 해당 컬렉션에 보존되었으며 모든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다.
카페인 함량이 적은 이유는?
일부 자손은 좋은 생산량을 보였지만 종자의 모양으로 인해 마케팅이 복잡해졌다. 브라질에서는 잎을 잃지 않고 장기간의 가뭄에도 큰 저항력을 보였다. Laurina의 특성은 다발성 효과를 갖는 한 쌍의 열성 유전자에 의해 제어된다. 즉, 해당 유전자 쌍은 여러 표현형 특성을 제어하고 열성이므로 때때로 유전되지 않는 이유이다.
Laurina의 가장 뛰어난 특징 중 하나는 자연적으로 카페인이 적은 커피라는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카페인 함량은 0.3~0.5%에 불과한 반면, 아라비카 커피 원두는 일반적으로 약 1.4% 이상을 함유하고 있다. 왜 카페인 함량이 적은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Laurina (Ir) 돌연변이가 해당 품종에 존재하는 Coffea canephora (Coffea arabica의 부모)의 카페인 함량에 관한 게놈의 유전적 영향을 억제하여, 이 특성 때문에 Coffea eugenioides (아라비카 커피의 또 다른 조상)와 유사한 표현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저카페인 또는 무카페인 커피의 대부분은 원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화학적 공정을 거쳤기 때문에, 커피의 화학적 조성과 향이 바뀐다: Laurina에서는 낮은 카페인 함량이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얻어진다. 그러나 식물의 카페인은 천연 살충제 역할을 하므로 카페인이 적으면 식물은 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덜하고 질병에 더 잘 걸리게 된다. 따라서 재배하기가 더 어렵고 일반적으로 수확량이 낮은 품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커피에 비해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다.
오늘의 부루봉 포인투
이 커피나무는 특히 La Réunion 섬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되어 있으며, 생산성과 수확량이 항상 낮은 다른 지역에서 재배가 매우 어렵게 만들었으며, 녹과 같은 잎의 곰팡이 질병에 대한 민감성으로 생산이 크게 복잡해졌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스타리카의 포아스 (Poas) 화산 경사면에 위치한 Doka Estate 농장은 Laurina 생산의 선구자이다. 그들은 약 10년 동안 이 커피를 실험적으로 재배해 왔으며, 2016년부터 로스팅 회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그들은 여러 농장에 걸쳐 총 약 20헥타르에 달하는 부르봉 포인투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의 운영 관리자인 Mr. Mariano Vargas의 말에 따르면, Laurina 커피나무는 특별한 지형 요구 사항을 요구하지 않으며 평평하고 경사진 지형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란다. 그러나 Bourbon Pointu는 녹에 매우 취약하므로 조기 모니터링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이 커피는 그늘에 잘 견디는 커피이며 생산성과 컵의 최대 잠재력은 해발 1,600m 이상의 고도에서 도달되었다.
Reunion 섬의 Bourbon Pointu는 Piton des Neiges 화산 (삐똥 데 네쥬) 옆에서(경사면에서) 자란다. 그곳의 토양은 매우 풍부하여 컴플렉스한 커피를 생산하며,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놀라울 정도로 미각이 미묘하다. 최적의 성숙 시점에 있는 체리를 선택하기 위해 세심하게 손으로 수확한다. 커피는 특정 습식 공정을 통해 처리되어 100% 햇빛에 건조되고, 장인의 방식으로 로스팅 되어 아로마가 독특한 풍미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관능적 특성
전문가들은 이 커피의 맛을 미디엄 바디와 균형 잡힌 커피로 정의한다. 지나치게 로맨틱하지도 않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 지속되는 뒷맛을 나타낸다. 산도는 쓴맛과 마찬가지로 중간 정도로 간주될 수 있다. 과일 향의 존재감도 불균형 없이 딱 적당하며, 이 원두의 낮은 카페인 함량으로 인해 매우 낮은 떫은맛이 강조된다.
현재 La Reunion 섬에서는 부르봉 포인투 프리미엄 (Bourbon Pointu premium)과 부르봉 론드 (Bourbon rond) 두 가지 종류의 커피가 소비되고 생산된다. 후자는 예멘에서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이 그 맛에 반해 그 성질을 분석한 것 같은데, 아라비카 기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생산량은 연간 3톤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격은 €650/Kg에 달했고 일본인이 생산량의 80%를 구입했다. 나머지 커피 중 적은 부분은 섬에 머무르고 나머지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Cafe Procope나 Fouquet's와 같은 독점 장소에서 주문된다. 부르봉 뽀엥튀 한 잔의 가격은 10유로에서 20유로 사이로 다양하며, 이는 일본에서 동일한 컵 가격의 절반이다!
브루봉 뽀엥튀의 차별화
스페셜티 로스터들은 생산되는 재배품종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인식하고 있으며, 유전자 이입된 하이브리드들에 대한 수용의 역사가 확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Stumptown의 “Coffee Varieties” 웹페이지는 Bourbon 및 Catimor 항목으로 연결된다. Bourbon은 “so sweet, so complex, and so delicate”한 반면, Catimors는 “문제가 있는 커피 원두가 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Coffeeresearch.org는 또한 “4,000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는 Bourbon, Caturra 및 Catuai가 [Catimor보다] 더 나은 컵 품질을 갖는다”는 주장을 지속한다.
자주 칭찬받는 citric acidity를 지닌 pure Bourbon은 질병 저항성과 생산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잠재적인 품질과 컵 점수 상한선이 더 높다는 인식이 있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많은 스페셜티 커피 재배자들이 계속해서 Bourbon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기후 변화와 잎 녹병이 피해를 입고 있다. 좋은 조건에서는 명백한 위험이 지불 가격과 시장 차별화에서 잠재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야심 찬 농부에게는 일반 상품 커피 분야와의 차별화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생산자는 희귀하고 독특한 것을 재배하도록 선택할 수 있다. Laurina는 비교할 수 없는 플레이버 프로필과 일치하는 흔하지 않은 물리적 특성을 갖춘 흥미로운 옵션을 여기에 제시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주된 특성으로 알려진 bright acidity가 거의 완전히 없다. 로스터가 Laurina 프로파일을 완벽하게 만드는 어려운 임무를 맡을 때 커피는 달콤하면서도 쓴맛이 거의 전혀 없을 수 있다 (아마도 카페인이 없기 때문에).
Pacific Coffee Research의 교육자이자 에스프레소 기술자인 Madeleine Longoria Garcia는 하와이-재배의 Laurina에 대한 최근 경험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는, washed laurina는 많은 nutty/Maillard notes와, 아울러 약간의 brown sugar sweetness와 black tea tannis를 가졌다; 다른 한쪽 끝에선, natural Laurina는 tartaric and malic acidity, dried red fruit notes (strawberry, plum, white grapes, green apple 등), dark chocolat 그리고 white wine brightness/tannins를 가졌다.” Hadad는 또한, CGLE의 natural Laurina를 대담하고 과일향이 나는 용어들로 표현하며 “키위, 딸기, 바닐라의 과일 향이 나는 강렬한 citric aroma와 발포성 바디 (effervescent body)”라고 언급한다.
Bourbon과 Laurina는 생산자가 평범함의 바다에서 눈에 띄고 품질을 중시하는 구매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의 예를 제시한다.
그래서, 커피의 세계화 직전에 Réunion은 신흥 상품 중 최고 품종인 Bourbon과 독특한 Pointu 품종으로 무장했다. 이 섬은 18세기 전반에 걸쳐 수출량 면에서 거의 전 세계적인 지배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재배가 카리브해와 베트남에서 확대되면서 레위니옹의 수출은 결국 주춤했다. 1806년에 대규모 사이클론이 강타하고 사탕수수와의 경쟁에 직면하면서 커피는 섬에서 인기를 잃었다.
Réunion 섬은 21세기에도 소규모 커피 생산지로 남아 있으며, 관광청에서는 루이 15세, 발자크(Balzac), 일본 스페셜티 커피 협회와 같은 출처를 인용하여 Pointu를 “the king of coffees” 및 “the beast (and one of the most expensive)”로 홍보하고 있으며, 자칭 “coffee hunter”이자 TEDx 강연자인 요시아키 카와시마(Yoshiaki Kawashima)는 1999년 레위니옹의 거의 잊혀진 Bourbon Pointu 숲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7AKyI7FRpA)
많은 “기존” 대량생산 지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정을 위한 투쟁은 차별화의 하나가 되었다. Réunion의 경우, 희귀하고 독특한 품질의 상징인 Pointu 품종에 의지해 왔다.
Laurina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Bourbon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커피 세계화에서 Réunion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섬은 전체 종을 단일 식물 품종까지 여과하는 일을 담당한다. 외로운 부모 나무에서 태어난 바로 그 Bourbon 재배품종은 거의 모든 아프리카와 서반구에서 Typica를 성공적으로 능가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Bourbon은 하스 아보카도(Hass avocado)나 캐번디시 바나나(Cavendish 바나나)의 지배력과 실질적으로 유사하게 재배되는 지배적인 커피 유형이 되었다. Bourbon은 레거시 품종(legacy variety)으로 명성을 얻은 것 이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에 대한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으며, 그 출현의 원인이 된 섬은 커피 이야기의 중심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Original articles & References
- Chris Kornman. Bourbon’s Botanical Origins and the Evolution of Laurina. Issue 101: September | October 2020 roast Magazine.
- William Solano. NUEVOS CAFES BOURBON POINTU (LAURIA), fórumcafé | N82 SEPTIEMBRE 2020.
- Kevin Shillington (2004 ed.). Encyclopedia of African History 3-Volume Set.
Routledge. ISBN 9781579582456. - Robert Lambert Playfair (1859). A History Of Arabia Felix Or Yemen : From The Commencement Of The Christian Era To The Present Time, Including An Account Of The British Settlement Of Aden. Bombay: Education Society's Press.
- Aurélie Lécolier, Pascale Besse, André Charrier, Thierry-Nicolas Tchakaloff and Michel Noirot (2009).
Unraveling the origin of Coffea arabica ‘Bourbon pointu’ from La Réunion: a historical and scientific perspective. Euphytica 168(1):1-10. - E. Rauol (1897). Culture du Caféier : Semis, Plantations, Taille, Cueillette, Dépulpation, Décorticage Expédition, Commerce, Espéces et Races.
- E. C. Spary (2012). Eating the Enlightenment: Food and the Sciences in Paris, 1670-176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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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ngt Sundkler & Christopher Steed (2000). A History of the Church in Africa. Cambridge University Press (May 29, 2000).
- The Tea & Coffee Trade Journal, Volumes 32-33.
- Henri Bernardin de Saint-Pierre (1773).
Voyage À l'Isle de France, À l'Isle de Bourbon, Au Cap de Bonne-Espérance.
Merlin, Amsterdam, Paris. - M. Demerec (ed.) Advances in Genetics (1st Edition, Volume 4 - January 1, 1951). ISBN: 9780080567914.
- https://tedxhamamatsu.com/en/speakers/kawashima-yoshiaki/
레위니옹 섬 연대기
- 1504년 - 이 섬을 목격한 최초의 유럽인은 Diego Fernandez Peteira.
그는 섬을 Santa Apolonia라고 부르는데, 이는 발견 날짜가
처녀 순교자인 Saint Apollonia의 축일인 2월 9일이었을 수 있음을 암시. - 1509년 - Diogo Lopes de Sequeira가 레위니옹 섬과 로드리게스 섬에 상륙.
- 1513년 - Dom Pedro Mascarenhas는 레위니옹, 모리셔스 및 로드리게스 부근을 탐색.
- 1528년 - 탐험가 Diogo Rodrigues (그의 이름을 따서 Rodrigues 섬의 이름이 지정됨)는
Mascarenhas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을 총칭하여 Mascarene Islands라고 명명. - 1611년 - 네덜란드 선장 Pieter Willemsz 자바에서 돌아옴.
Verhoeff는 12월 27일에 레위니옹을 보지만 멈추지 않았음. - 1613년 - 3월 23일부터 24일까지 실론에서 돌아온 Samuel Castleton 선장은,
The Pearl에 승선하여 Reunion에 정박하고
그곳에서 England's Forest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거북이, 산비둘기, 앵무새, 따오기, 장어, 오리, 거위 등이 있는 천국 같은 섬이라고 묘사. - 1638년 - François Cauche와 Salomon Goubert가
6월 25일에 처음으로 프랑스의 레위니옹 소유권을 주장. - 1642년 - 6월 29일 자크 프로니스(Jacques Pronis)가
두 번째로 프랑스의 레위니옹 소유권을 주장. - 1646년 - 마다가스카르의 도팽 요새(Fort Dauphin)에서 12명의 반란군이
레위니옹으로 보내져 1649년 8월까지 그곳에 버려졌다. - 1649년 - 9월 7일 반란자들을 마다가스카르로 압송.
반란자들이 이 섬에서 3년 동안 살아남았기 때문에 거주 가능한 것으로 선언되었다.
소유권 주장은 이번에는 Flacourt가 세 번째로 제기.
섬의 이름은 부루봉 가문의 이름을 따서 부루봉으로 명명되었으며 섬의 첫 번째 지도가 그려졌다. - 1663년 - 11월 10일, 세인트 샤를(Saint-Charles)이 생뽈 만(Bay of Saint Paul)에 정박.
배에는 프랑스인 2명과 여성 3명을 포함해 마다가스카르 노예 10명이 타고 있었다. - 1665년 - 공식적인 식민지화 시작. 프랑스 동인도 회사의 설립과 노예 제도의 시작.
Etienne Regnault는 20명의 정착민 그룹과 함께 7월 10일에
도착하여 새 식민지의 첫 번째 거버너가 된다. - 1667년 - 이 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첫 번째 아이가 탄생.
- 1671년 - 주민 76명
- 1680년 -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인도에서 수많은 노예가 이 섬으로 보내졌다.
- 1686년 - 주민 216명
- 1709년 - 894명
- 1711년 - 프랑스 동인도회사 사무총장의 아들 Louis Boyvin d'Hardancourt,
4월-9월까지 부루봉 섬을 방문 체류, 섬애서 야생커피나무 발견. - 1715년 - Moka로부터 60그루의 커피나무를 가져와 9월 Bourbon에 상륙.
- 1728년 - Saint-Louis와 Sainte-Suzanne 교구들 설립.
- 1722년 - Sainte-Marie 교구 설립
- 1723년 - 12월 인도양 섬들에서의 노예제도 시행 허용문 발표
- 1727년 - 베누아 뒤마 (Benoît Dumas) 거버너 섬으로 파견
- 1732년 - 동인도회사의 해안가의 회사 부지 및 분양구역 획정을 위한 측설 작업 개시
- 1734년 - Saint-Benoît 교구 설립
- 1735년 - Bertrand-François Mahé de La Bourdonnais가
Ile de France (모리셔스)와 Bourbon의 거버너로 임명됨.
Saint-Pierre 교구 설립 - 1740년 - Saint-André 교구 설립
- 1747년 - 진딧물 커피 나무 피해
- 1729년 - 진딧물 커피 나무 피해
- 1764년 - 이 섬은 왕의 권위 아래 놓이게 된다.
정착민 인구 4,000명 - 1771년 - Ravine des Chèvres에 있는 Bourbon의 Pajot 씨 묘목장에서
전직 해군 장교였던 재배 책임자 Leroy가 Bourbon pointu를 발견. - 1794년 - 부루봉은 미국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레위니옹 섬이 되었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법령이 통과되었지만 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1806년 - 레위니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따서
일 보나파르트(Ile Bonaparte)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 1806년(12월) - 1807년(3월) - 4개의 사이클론이 레위니옹 섬을 강타.
가뭄(및 기아)이 뒤따르면 커피와 정향 농장이 종말을 맞이하게 되며 점차 사탕수수로 대체. - 1810년 - 이 섬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조시아스 제독이 이끄는 영국 왕립 해군 함대의 침공을 받아
다시 '레위니옹 섬'이 되었다. - 1815년 - 이 섬은 다시 한번 프랑스에 항복하고 이름을 다시 부르봉으로 바꾸었다.
일 드 프랑스(Ile de France)는 영국 소유로 남아있다. - 1820년 - 콜레라 전염병
- 1841년 - 바닐라의 인공 수정 방법이 지역 노예인
에드먼드 알비우스(Edmond Albius)에 의해 발견. - 1848년 - 노예 제도가 폐지되어 60,000명 이상이 해방.
부루봉섬(Bourbon Island)은 이름을 다시
레위니옹(Reunion)으로 변경. - 1849년 - 식민지 은행의 창설
- 1850년 - 천연두 전염병으로 1,400명이 사망
- 1852년 - Louis Henri Hubert Delisle이 섬의 첫 번째 크리올 거버너가 되었다.
- 1854년 - 생 피에르(Saint Pierre) 항구에서 작업이 시작.
- 1860년 - 섬의 인구 179,000명.
- 1863년 - 세 번의 격렬한 사이클론 발생.
- 1869년 -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동인도 무역로의 중간 기착지로서 이 섬의 중요성이 감소. - 1882년 - 철도 개통
- 1886년 - Pointe des Galets 항구 건설
- 1900년 - 섬 최초의 자동차
- 1904년 - 주요 사이클론
- 1905년 - 섬 최초의 극장(Le Casino)이 생드니에 개장.
- 1906년 - 수중 전신 케이블이 레위니옹 섬과 프랑스 본토를 연결.
- 1911년 - Marius-Ary Leblond가 Leon Dierx 박물관을 설립.
- 1914년 - 제1차 세계대전 중 식민지는 10,000명의 레위니옹 군인을
프랑스 동부의 참호에 파견. 그 중 10%가 그곳에서 전사. - 1918년 - 레위니옹 비행사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가 제1차 세계 대전 중 사망(10월 5일)
- 1919년 -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여 5,000명 이상이 사망.
- 1920년 - 최초의 수력 발전소
- 1928년 – 생드니 라디오 방송이 시작.
- 1929년 - 프랑스 본토와의 최초 항공 연결
- 1932년 - 실라오스 도로 개통. 대규모 사이클론으로 인해 90명 사망, 41,000명의 이재민 발생.
- 1936-37년 - 파업
- 1939년 - 전쟁이 선포되고 첫 번째 파견대가 레위니옹을 떠남
- 1940년 - 레위니옹은 Petain’s Vichy regime (페탱의 비시 정권) 아래도 들어감.
- 1942년 - 자유 프랑스군이 구축함 Léopard와 함께 섬을 점령하자
레위니옹은 비시 정권 지원에서 자유 프랑스 정권으로 전환합니다. - 1945년 - 레위니옹에서 CFA 프랑 도입
- 1946년 - 3월 19일 레위니옹이 프랑스의 87번째 데파르트망이 되었다.
- 1948년 - 주요 사이클론 - 165명 사망, 20,000명 이재민 발생
- 1951년 - Journal de l'Ile de la Réunion 신문 창간.
수중 해저 케이블을 통해 프랑스 본토와 직통 전화선 연결. - 1975년 - 레위니옹에서 CFA 프랑이 철수. 10월 1일부터 Reunion은 자체 우표 인쇄를 중단.
- 1981년 - 섬 최초의 독립 지역 라디오 방송국(Radio FreeDOM) 창설
- 1991년 - 당국이 해적 방송국 Radio FreeDom을 방송하는 불법 송신기를 압수한 후,
생드니 Chaudron 지역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8명이 사망. - 1992년 - Reunion의 두 설탕 공장들이 이중 연료(버개스-석탄) 발전소를 확충.
- 1997년 - 레위니옹은 유럽 연합의 7개 초주변 지역(UPR) 중 하나가 되었다.
- 1998년 - 12월 19일 피에르퐁 공항 개장
- 2005년 - 2006년 - 최소 250,000명의 주민이 감염되는 모기 매개 치쿤구니야 질병의 전염병 발발.
- 2006년 - 레위니옹 주민 780,000명
- 2007년 - 사이클론 Gamede가 대부분의 세계 강수량 기록을 경신.
- 2009년 - 말로야 음악이 프랑스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
- 2010년 - Pitons (봉우리), Cirques (圓谷) 및 Remparts of Reunion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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