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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History

커피발견의 전설들

by mjcafe 2023. 4. 27.

Kaldi and Dancing Goats, Source : William H. Ukers (2009), All about coffee

 

Kaldi는 커피나무를 발견한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였다. 사실 이 스토리는 출처가 불분명하다 (apocryphal). 커피 관한 최초의 인쇄된 논문(treaties) 가운데 하나인 De Saluerrima potione Cahue seu Cafe Nuncupata Discurscus』 (Rome, 1671)를 저술한 저자 Antoine Faustus Nairon이 관계된다. 그는 로마의 동양 언어(시리아어) 교수이었으며, 마론파 교도(maronite, 주로 레바논에 거주하며, 동방 의식을 채용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일파)였라틴어로 된 이 논문의 제목은 가장 안전한 음료(De saluberrima potione) 카훼 또는 카페에 대한 담론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이름은 Murhij ibn Nirun al-Bani (1628-1711)이며 라틴어로는 Faustus Nairon 또는 Fauste Nairon de Bane이다.  로마의 사피엔자 대학의 시리아어(페니키아어) 교수였다그는 북부 레바논의 마을인 BânMaronite 가족 출신이었다. 부모가 정착한 1628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그는 로마의 마론파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레바논으로 가서 족장에게 자신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제사장으로 성임 받고 마론파의 전례를 인쇄 수정하는 임무를 받았다. 1656년 로마에서 인쇄가 완료된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로마 사피엔자 대학에서 경력을 쌓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최초의 커피 관련 논문 표지, 첫 페이지, 그리고 커피발견 전설 언급 페이지들

이 라틴어로 된 논문의 비교적 앞부분에 커피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Conquerebatur enimquidam Camelorum, feu vt alij aiunt, Caprarum Cuftos, vt communis Orientaliú fert traditio, cum Monachis cuifdā Monafterij, in Ayaman Regione, quæ eft Arabia Fçlix, fua armenta non femel in hebdomada vigilare, imó per totam noetem, præter confuetum faltitare; Illuis Monafterij Prior Curiofitate duétus, hoc ex pafcuis prouenire arbitratus eft, & attenté confiderans vnà cum eius focio locum vbi Capræ, vel Cameli illa noete, qua faltitanat pafcebantur, inuenit ibi quædam arbufcula, quorum fruetibus,  feu potius baccis vefcebantur;

 

huiufce fruetus virtutes voluit ipfemet experiri, ideoque illos in aqaua ebulliens ftatim illorum potum noetu vigilantiam excitare expertus eft, ex quo faetum eft, vt á Monachis quotidié adhiberi propter noeturnas vigilias iufferit,, vt promptiores ad noetis affifterent orationes ; at qui ex hoc quotidiano potu, cum varios ac faluberrimos pro humana falute, ac bona valetudine, effectus in dies experirentur, per vniuerfam paulatim regionem illam, deinde per alias Orientis Prouincis,ac Regna temporis progfreffu nouu huius potionis genus, fortiito, ac mirabili Dei poruidentia ea diffufum eft falubritate, ve ad Occidentales etiam, ac prafertim, Europas peruaferit plagas. 

 

낙타, 또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하는, 염소를 돌보는 어떤 사람(이것은 동양 사람들 사이의 일반적인 전통)이 Ayaman [예멘], 왕국, 즉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에 있는 특정 수도원의 수도자에게 불평했다. 그의 (염소) 무리가 일주일에 두세 번 밤새도록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이한 방식으로 몸싸움과 춤을 추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수도원의 원장은 호기심에 이끌려 그 문제를 생각하던 중, 이는 분명히 음식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수도원장이 염소나 낙타가 풀을 뜯던 곳을 잘 살펴보았고, 그들이(염소들) 춤을 추었을 때 먹은 과일이나 열매에서 특정 관목이나 덤불을 발견했다. 그는 이 열매의 효능을  직접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후 물에 끓여서 마셨고 경험에 따르면 밤에 깨어있었다. 따라서 그는 이를 가져다가 수도원에서 매일 사용하도록 명령했다. 깨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밤에 수행해야 하는 신심에 더 쉽고 확실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이를 자주 사용하여 수도사들은 매일 그것의 건전함을 경험했고 그것이 그들을 완벽한 건강으로 유지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그 음료에 대한 요청이 왕국 전체에 걸쳐 늘어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쪽의 다른 지방들과 국가들에서도 그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단순한 사고에 의해, 그리고 전능하신 분의 위대하고 놀라운 섭리에 따라, 그 완전함의 명성은 점점 더 서부 지역, 특히 유럽 지역으로 퍼졌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William H. Ukers의 유명한 저서 All about Coffee에서는 아주 살짝 추가하여 소개하고 있다; 

 

커피 음료의 기원에 관한 또 하나의 유명한 전설은 이집트 북부 또는 아비시니아 지방의 염소지기에게서 시작된다. 한 염소지기가 아라비아에서 온 수도원 원장에게, 평소에 얌전하던 염소들이 목장 근처에서 처음 보는 열매를 먹은 뒤부터는 이상할 정도로 날뛴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염소지기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원장은 몸소 그 열매의 효능을 시험해 보았다. 그 역시 새로운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원장은 수도사들에게 이 열매를 달인 즙을 마실 것을 명했고, 덕분에 수도사들은 이제 야간 예배 도중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불면의 수도원'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 "각지에서 열매를 구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후에는 다른 나라와 동양으로까지 이야기가 확산되어 그곳에서도 열매를 음용하게 됐다"고 한다. 

 

 우스이 류이치로 (2008)는 자신의 저서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의 첫 시작부분에서 역시 이 Kaldi의 전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면서, 이런 줄거리를 가진 전설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변형되어 널리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전설은 17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동양학자 파우스테 나이론이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산양과 양치기가 등장하는 목가적인 이야기 구성이 어딘가 유럽적인 냄새가 난다고 평하고 있다. 그는 이슬람권에는 커피의 발견 혹은 탄생에 산양(염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예외적으로 어느 성자가 뿌린 산양의 똥에서 커피나무가 자랐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커피콩이 산양의 똥과 닮은데서 유래된 내용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어느 날, 칼디가 산양 무리를 새 목초지로 데리고 갔는데, 산양들이 흥분을 해서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다. 당황한 칼디는 근처의 수도원을 찾아갔다. 수도원장 스키아들리가 조사를 해보니, 산양들이 어느 작은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열매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먹어보다가 한 번은 끓여서 마셔보았다. 그러자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도원에서는 잠에 예배를 볼 때마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수도원장은 그 열매 끓인 음료를 그들에게 마시게 했다. 효과는 금새 나타났다. 그 후로 수도원에서는 예배 때마다 그 검은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The Devil's Cup (2000)의 Stewart Lee Allen이 들었다고 소개한 전설 버전은 다음과 같다 ;

 

Kaldi라는 이름의 에티오피아 양치기는 어느 날 그의 가장 좋은 염소가 미친 듯이 춤을 추고 흥얼거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늙은 숫염소가 어떤 식물의 열매를 갉아먹은 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았습니다. 목동은 몇 마리를 직접 시험해 보았고 곧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한 성자가 지나가다가 소년에게 왜 염소와 춤을 추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양치기는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열매 몇 개를 집으로 가져갔고 그것을 먹은 후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이 성자는 다소 지루한 철야 설교로 유명했고 제자들을 깨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데르비시라고 불리는 그의 모든 제자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콩을 씹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데르비시들의 졸음은 사라졌고,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지혜로 당신을 새벽까지 깨어 있게 한 위대한 예언자에 대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커피 역사서로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Mark Pendergrast (2019)의 『Uncommon Grounds』에서는 다음과 같이 더 재미있게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인류의 요람, 지금 Ethiopia라고 하는 고대의 Abyssinia 땅이 커피의 탄생지일 것이다. 우리는 커피가 언제 또는 누구에 의해 발견되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여러 전설들 가운데, 가장 어필하는 것이 dancing goats의 전설일 것이다. Kaldi라고 하는, 성격상 시인인,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는 그의 염소들이 먹이를 찾아 산등성이를 쓸고 다님에 따라 만들어진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많지 않아, 그는 자유롭게 노래를 만들고 그의 피리로 연주를 했다. 오후 늦게, 그가 특별한 날카로운 소리는 내면 그의 염소들은 숲에서 돌아다니다 후다닥 나와 그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염소들이 오지 않았다. Kaldi는 그의 피리를 세게 다시 불었다. 그래도 염소들은 오지 않았다. 당황한 그 소년은 염소들이 들리도록 더 높이 올라갔다. 그는 마침내 멀리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좁은 산길 모퉁이를 따라 뛰자 Kaldi는 염소들을 발견했다. 햇빛이 갑자기 환한 얼룩으로 촘촘하게 비추도록 우거진 두터운 우거진 숲 아래, 염소들이 뛰어다니고, 서로 들이받고, 뒷다리로 춤을 추고, 그리고 열광적으로 짖고 있었다. 그 소년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stood gaping at). 그 놈들은 분명히 귀신들렸다고(bewitched) 생각했다. 그가 보니, 몇몇 염소들은 빛나는 녹색 이파리들을 씹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본적이 없는 나무의 빨간 베리들을 먹고 있었다. 그 염소들을 미치게 한 나무들이 분명했다. 독인가? 염소들이 모두 죽게 되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죽일 것이다!

   몇시간이 지나도 염소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죽지 않았다. 그 다음날 그들은 같은 수풀로 곧장 다시 가서 어제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이때 Kaldi는 그가 염소들에 합류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잎 몇 장을 씹어 먹어보았다. 쓴 맛이 났다. 그러나, 그가 그것들을 씹었을 때(masticated), 그는 그의 혀에서부터 그의 장으로 내려가는 느린 흥분(얼얼함)을 겪고, 그것은 전신으로 퍼졌다. 그 다음에, 그는 그 베리들을 먹어보았다. 그 열매는 약간 달았고, 튀어 나온 씨앗들은 두껍고 맛있는 점액질로 덮여 있었다. 마침내 그는 그 씨앗들도 씹어 먹었다. 그리고 그의 잎 속에서 다른 베리를 터졌다.

 

   전설에 따르면, Kaldi는 곧 그의 염소들과 함께 뛰놀고 있었다(frisking). 그에게서 시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는 그가 전혀 피곤하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았다. Kaldi는 그 마법의 나무에 관해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고, 말이 퍼졌고, 곧 커피는 에티오피아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 전설에서와 같이, 소위 (bunn)이라는 커피 콩들의 잎들을 처음에는 그냥 씹어 먹었지만, 창의적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카페인 첨가제를 얻는 더욱 맛 좋은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들은 연한 차처럼 끓인 물로 그 잎과 베리를 우려냈다. 그들은 콩들을 갈아서 동물의 지방과 섞어 빠른 에너지 스낵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발효된 펄프로부터 와인을 만들었다. 그들은 약하게 볶인 커피 체리의 겉껍질들(husks)로부터 qishr(키쉬르)라고 하는 달달한 음료를 만들었다.    

 

1671년까지는 문헌 상에 이 전설이 나타나지 않았고, 대부분 Kaldi A.D. 850년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어 얼마나 전설인지 신화인지 말하기 어렵다. Kaldi의 이야기는 9세기 중에 Ethiopia에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는 보편적인 믿음과 일치한다.

   Kaffa의 염소 전설은 또한 어느 날 자극제 겸 음료로서의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이전 수세기 동안 자극제로 커피를 씹어 먹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쇄된 콩을 ghee (clarified butter) 동물 지방으로 만든 된 풀에 섞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랜 또는 고된(arduous) 여행에서 용한 에너지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커피 콩을 씹는 관습이 Kaffa에서부터 HarrarArabia로 노예가 된 수단 사람들에 의해서 옮겨졌다고 생각한다. 수단 노예들은 EthiopiaGalla 부족으로부터 그 관습을 배웠다. KaffaSidamo의 어떤 지역들에서는, ghee 속에 ground coffee를 넣어 먹는 전통이 남아 있다. Kaffa에는 플레이버를 더 풍부하게 하고 영양적으로 더 밀도 있게 하기 위해 녹인 ghee 우려낸 커피에 첨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10세기 경, 몇몇 에티오피아 토착부족들은 porridge(포리쥐, 희멀건 죽) 같은 것에 커피를 넣어 먹었다. 점차 커피를 먹는 것이 줄어들고 음료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어떤 부족들은 커피 체리들을 발효시켜 일종의 와인으로 만들었고, 어떤 부족들은 볶고 갈고 끓여 달인 즙(decoction)으로 만들어 먹었다.

   커피를 우리는(brewing) 관습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가 되었고 13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에 퍼졌을 때, 커피는, 허브를 달인 즙과 비슷하게 더욱 강하고 더욱 진하게 우려졌다. 이런 형태로, 커피는 효능 좋은 약제 그리고 강력한 기도 보조제로서 존중 받았다. 에티오피아식 커피,  터키식 커피, 그리스식 커피는 이런 boiling coffee의 전통을 계속 가지고 있다.  

 

커피를 음료 작물로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 아직 불명확하다. 언제 인류가 커피를 처음 재배했는지(domesticated)를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없다.  대신, 음료로서 커피 사용을 말하는 여러 전설들이 있다. 이런 전설들에도 불구하고, 식용 작물로서 처음 사용한 것은 오로모人들(Oromo people)이었다고 여러 학자들이 인정해오고 있다예를 들어, Gutu (2006)“AD 10세기 경 Oromo라는 에티오피아 유목민들이 커피의 익은 베리들과 동물의 지방을 섞어 둥근 볼 모양으로 만들어 씹었고 그들의 여행에서 음식으로 그리고 자극 효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그들이 음료로서 사용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Gutu Degefa, 2006).    

 

많은 여행자들 중에, 1768~1775년 사이에 에티오피아를 여행했던 스코틀랜드 탐험가  James Bruce(블루 나일강의 기원을 추적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유명한 여행가)Merid’s work에서 같은 것을 보고했다. “커피 콩으로부터 음식으로 커피를 처음 사용했던 것은 Oromo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커피 콩을 로스팅하여 가루로 만든 다음 버터와 섞어 공 모양으로 말아 가죽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정도로 농도로 혼합했다. 이 공의 구성은 하루 종일 피로 중에 힘과 정신을 유지하게 했다고 하며, 빵 한조각이나 고기 한끼보다 더 좋다고 했다.” 그들은 Waaqa()의 축복에서 오는 Oromo 전통 종교에서 재계(齋戒)를 견디어 내는데 도움을 주도록 긴 여행 중에 그것을 사용했다. 그것은 사람과 동물의 생식력(fertility), 훌륭한 수확, 사회에서의 평화와 원만한 관계에서 분명했다. 나아가, 커피 베리는 Qorii/Chukkoo라고 알려진 Oromo 전통 음식의 중요한 성분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Qorii는 커피 베리들과 보리를 볶아 앙념된 버터와 섞어 만든다 (Aragey, 1988).

 

Oromo 농부들은 Waaqa()의 존재를 즐기기 위해 집 주위에 커피 나무들을 심었다. 이는 Oromo 사람들은 커피는 “tears of Waaqa (신의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Oromo 사람들이 커피 콩을 씹는 것은, 활력 필요를 위해 먹었을 때인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Siraj, 1996). 구전에 따르면, 옛날에 Oromo 사람들은 커피 베리들로 처리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야생 커피나무들에서 익은 커피 베리들을 수거하여 그것들을 돌 절구에서 갈고 깔린 씨앗들과 펄프를 버터와 섞어 작은 환들을 만들어 긴 여행 중에 먹기 위해 가지고 다녔다. 어려운 일 또는 긴 여행 중인 전사들, 농부들, 상인들이 배고픔과 피로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그런 환들을 먹었다 (Wild, 2005). 18세기 후반에, 여러 학자들이 이미 Amhara Kingdom에 살았던  Oromo人들이 볶은 커피 파우더와 버터를 섞어 먹었다고 했다 (Siriksa, 2011).     

 

커피나무의 커피음용 습관이 확장된 것은 16세기의 Oromo 확장 동안이었다고 믿는다 (Aragey, 1988). 그러나 에티오피아 일부 지역들에서는 커피 음용이 17세기말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17세기말 전에 에티오피아 정교회 (the Ethiopian Orthodox Church)는 기독교인들이 커피 음용, 담배 흡연, 그리고 캇트 씹는 것을 금했다 (Aregay, 1988). 19세기 초반까지도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외계 음료로 여겼다. 특히 샤와에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신의 저주를 받은 담배 못지 않게 커피를 강력하게 반대했고, 파문의 고통을 느끼며 한 동안 커피를 금지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커피를 마시는 것을 포함하는 축하 행사와 종교 의식을 가진 무슬림과 전통적인 정령 숭배자들이 커피를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커피는 19세기의 장거리 캐러밴 상인들에 의해 에티오피아 고원지대 전반에 걸쳐 퍼진 것이라고 한다. 아마 북부의 일부에 그것을 퍼뜨린 이들은 Oromo 무역상들이었다. 19세기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1885년에 끝난 10년간의 이집트 점령 기간 동안 권장되었던 무슬림 도시 Harar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콩 자체는 너무 중요했고 모든 사람이 소비하기에는 수출 작물이었다. 대신, 음료는 커피 펄프(pilp), 껍질(husks) 또는 잎을 끓여서 만들었다. 때로는 우유를 첨가하고 설탕으로 달게 하거나 소금으로 맛을 냈다. 

 

그 음료는 Kaffa에서, 그리고 Wallo 및 Jimma의 무슬림 사이에서 동등하게 높이 평가되었다. 그것은 종종 에티오피아 카다몬(cardamon), 소금, 버터 또는 정향(cloves)으로 맛을 내고 때로는 고수 풀(coriander)로 맛을 냈다. Bruce의 초기 관찰에 따르면, Kaffa에서는 베리들을 갈아서 약간의 버터와 꿀과 섞어 작은 공 모양으로 성형한 다음, 공을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 커피 베리들을 여러 방법들로 준비하여 먹는 습관은 일부 커피 재배 지역들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역 작물로서 커피의 중요성은 계속 커져갔다. 1840년대 초에 Shawa의 수도인 Ankobar에서 매년 약 1,500~1,700개의 낙타 적재량의 커피 원두가 판매되었다. 

 

커피 전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선지자 마호메트(the prophet Mohammed)가 오랜 업무 후에 극심한 피로에 고생하며 병상에서 알라신에게 기도할 때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장 가브리엘(the archangel Gabriel, 코란을 전해준 대천사)이 전능한 자의 명을 받고 나타나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음료는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이슬람 교도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신전)’의 귀퉁이에 세워져 있던 블랙스톤(모든 독실한 무슬림들이 천상에서 내려온 유성처럼 추앙하는 대상물)’만큼이나 검었다고 한다. 이 비밀의 약이 바로 쓴맛을 가진, 자극과 활력을 주는 카와또는 카베(kahveh)였던 것이다.

마호메트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전해준 검은색의 음료(as black as the Kaaba of Mecca)를 마시고 나자 40명의 남자를 말 안장에서 떨어뜨리고 40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음료는 카페로 불리게 되었다

(좌)(중) = 천사장 가브리엘이 모하메드에게 검은 음료 커피를 전해주는 모습. (우) = 하렘의 모임에서 커피를 제공하는 모습을 나타낸 고대 아랍 필사본 일러스트레이션(이슬람에서 풍요를 가져오는 상징적 과일인 석류가 담긴 쟁반이 보인다)

 

몇몇 이슬람 전통들은 커피 음료의 최초 사용자들은 종교인들이었다고 믿는다. 이들 가운데 하나인 1587년에 Abd-al-Kâdir (압달 카디르)에 의해 쓰여진 아라비아 필사본에 나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커피 이용을 칭송하는 이 설명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Bibliothéque Nationale at Paris)기록되어 있는 바에 따르면, A.D. 1258년 경의 의사이며 승려이었던 Sheik Omar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가 어떤 도덕적 태만으로 추방당했던 아라비아의 Ousab에서 커피 음료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THE EARLIEST COFFEE MANUSCRIPT (1587). Pages from the Arabian writing by Abd-al-Kâdir, photographed for this work in the Bibliothéque Nationale, Paris.

Sheik OmarMocha의 수호 성인이며 전설적 설립자이었던 Sheik Abou al-Hasan al-Schadheli제자였다.

이 설에 따르면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는 아라비아 Mocca의 수호 성주 Sheik Schadheli (셰이크 샤드힐리)의 제자로 중병에 시달리는 성주의 딸을 치료한 후 그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그것이 발각되어 문책을 당하면서 Sheik Schadheli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아라비아의 우자프山(Ousab)으로 추방되었다배고픔에 못 이겨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우연히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열매를 따 먹었고, 소스 팬에서 끓여 그 달인 즙을 마셨다여기서 오마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 뒤로부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 후 그 열매를 사용하여 많은 환자들을 구제하는 데 성공, 결국 그 동안의 죄가 풀리고 성자로서 존경 받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열매가 바로 커피 열매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Mocha 사람들에 의해 종교적인 신호로 생각하였다. 그 음료는 그 뒤로 Mocha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Sheik OmarOmar는 그의 스승 Schadheli와 메카 순례를 나섰을 때, 예멘 근처의 우자프 산속에 접어들자 갑자기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얼굴을 베일로 가린 자가 올 것인데, 그가 말하는 대로 따르면 되느니라”. 스승이 숨을 거두자 그가 말한 대로 얼굴을 베일로 가린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한 줌의 흙을 움켜쥐자 알라신의 가호가 있어 물이 솟아 올랐다. 오마르는 그 물로 스승의 시신을 깨끗이 씻어 매장했다. 그러고 나서 의문의 남자가 베일을 벗었는데, 그 또한 오마르의 스승이었던 샤드힐리이었다. 스승은 오마르에게 모카로 갈 것을 명했다.

Sheik Omar and the Marvelous Coffee Bird, Source : William H. Ukers (2009), All about coffee

모카에서 Omar가 한 줌의 흙을 움켜쥐자 또 한번 물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모카 최초의 우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카에는 역병이 돌았다. 병자들은 알라의 가르침에 정통한 Omar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기도로 많은 사람들의 병이 나았고, 그 소문이 퍼지자 더 많은 병자들이 그를 찾아 왔다. 병자들 중에는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 한 명이었었다. 그녀는 그 지방 영주의 딸이었는데 역병에 걸리자 Omar의 소문을 들은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온갖 해괴한 소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Omar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한 지붕 밑에서 잠을 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들 수군거렸다. 그리고 결국 소문은 영주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영주는 격노하여 Omar를 추방했다마을에서 쫓겨난 Sheik Omar와 그의 제자들이 먹을 것도 없는 the mountain of Ousab (우자프)속에서 그들 주변에서 자라던 무엇인가를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커피 체리들이었다.  그 열매를 먹으며 지내는 동안 열매를 끓여서 그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모카에는 옴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Omar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그를 찾아 우자프의 산속까지 들어왔다. Omar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커피를 마시게 했다. 검은 액체를 들이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Omar는 이렇게 말했다.

 

이 속에는 잠잠성수(the sacred waters of Zamzam)와 같은 힘이 들어 있습니다.”

 

잠잠 성수라는 것은 메카의 카바 신전 옆에 있는 우물을 말한다. 그 크고 깊은 우물은 먼 옛날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이 사라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추방되었을 때, 마실 물이 고갈된 황야에서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소리 높여 울부짖자, 신이 하갈의 눈을 뜨게 해서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메카를 순례하는 이슬람교도라면 반드시 그곳에서 잠잠성수를 마셨고, 혹시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가져가서 마시게 하면 병이 낫는다고들 했다. 이스마엘의 민족, 아라비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영험한 물인 것이다.

Omar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안심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옴이 말끔히 나았고, 마을로 돌아간 그들은 사람들에게 Omar와 검은 잠잠성수에 대해 전했다. 그를 추방했던 영주는 깊이 뉘우쳤다. 세이크 오마르의 마법 같은 치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다시 Mocha의 도시로 금의환향하게 되었으며, 영주는 Omar를 위해 암자를 지어 그에게 바쳤고, 승려의 신분으로 복권을 해주었고 성자로 추대하면서 마을로 다시 불러 맞이 했다

 

그 전설의 더욱 대중적인 버전은 the Abd-al-Kâdir 원본에 기초한다. 그 전설은 이렇다. Sheik Abou'l hasan Schadheli가 그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제자 Omar에게 나타나 의료활동을 위해 Mocha로 갈 것을 명령했다. OmarMocha 왕의 아름다운 공주를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녀를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그 왕은 몹시 화가 나서 Omar를 도시로부터 쫓아내고 Omarthe mountain of Ousab으로 추방 당했다허브들을 먹고 동굴에게 기거하던 그는 곧 그의 스승에게 자신의 길을 안내해달라며 울며 기도했다. 그의 불평은 신비로운 깃털을 가진 어느 새 한 마리로부터 나오는 굉장한 화음의 노래를 유발하였다. 그 새는 나무에 쉬고 있다가 Omar가 그 작은 새를 잡으려고 다가서자 새 대신에 커피 체리를 한 줌 잡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날 밤의 허브 식사를 준비하던 중에 그 체리를 스프를 만들기 위해 집어 넣었다. 그 믹스로부터 맛 좋고(savory) 향기로운 음료가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커피였다.    

 

커피 음료는 아라비아 의학의 고전 시대에 시작했는데, 이 시대는 Galen(갈레노스, 그리스 의사 Claudius)의 신조를 따르고, Hippocrates(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은 Rhazes (Abu Bakr Muhammad ibn Zakariya El Razi, 라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Rhazes (850–922)는 백과사전 같은 방식으로 의약을 다룬 최초의 인물이며, 어떤 권위자들에 따르면 커피를 언급한 최초의 저술가이다. 그는 Razi라는 필명을 썼는데, 페르시아 이라크의 Raj라는 도시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위대한 철학자이며 천문학자였고, 한 때는 바그다그 병원의 총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의약과 진료에 관한 많은 전문적인 책들을 집필했지만, 그의 주요 저서는 갈레노스 시대부터 당시까지 질병 치료의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집대성한 『Al-Haiwi 』또는 『The Continent』이다 (كتاب الحاوي في الطب  / Kitāb al-ḥāwī fī al-ṭibb / The Comprehensive Book on Medicine / The Large Comprehensive / Continens Liber).

 

Rhazes and Al-Haiwi

Philippe Sylvestre Dufour (1622–87) (프랑스 커피 상인, 철학자, 저술가)는 정확하고 완결된 커피에 관한 논문(‘커피의 특성‘)에서, bunchum이라는 이름 하에 커피 콩의 특성들을 언급한 최초의 저자는 예수 탄생 후 9세기 Rhazes이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커피는 천년 이상 동안 알려져 온 것으로 보인다.  

 

Dufour, Philippe Sylvestre. Traités Nouveaux et Curieux du Café, du Thé, et du Chocolat . Lyons, 1684. ( 표지만 Traitez 라고 되어 있고 ; 다른 부분들에서는 Traités 라고 되어 있음)

 

그러나, Robinson (1893)bunchum이 뭔가 다른 것을 의미했고, 커피와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Dufour는 그의 『Traitez Nouveaux et Curieux du Café (the Hague, 1693)』나중 에디션에서는 bunchum이 뿌리를 가졌을 수도 있으며, 커피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 아랍인들이 800년 전에 커피를 알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더 많은 권위자들은 그것은 6세기라고 한다.

   A.D. 856카비 처방전(Kavi (Javan) inscription)Wiji Kawih (까위 종자)가 언급되어져 있다. 그리고  David Tapperi의 자바 음료 리스트 (1667-82)에 있는 bean broth 커피일 수도 있다

 

커피 음용의 진정한 기원은, 그것이 전설과 우화 속에 있기 때문에 미사여구로 된 동방의 미스테리들 가운데 영원히 숨겨지고 가려질 수도 있는 반면, 학자들은 그 음료가 태곳적부터에티오피아에서 알려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충분한 사실들을 모아오고 있으며, Dufour의 서술에 신빙성(verisimilitude)을 더하는 많은 것이 있다.  언어가 출중하고 학습이 고상한 이 최초의 커피 大商人은 한 저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철학자보다 상인이 더 잘 알 수 있는 무엇인가가(예를 들어, 커피)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갔다.

 

Avicenna (Ibn Sina)

Bunchum Rhazes가 커피를 의미한 것이라면, 그 나무와 음료는 그의 다음 제자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A.D. 980~1037년까지 살았던 이슬람 의사이자 철학자이었던 Avicenna (Ibn Sina 이븐 시나)의 저술들에 비슷한 레퍼런스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Dufour의 진기한 말에서, Rhazesbunchum (coffee)은 뜨겁고 건조하며 위에 매우 좋다고 확인해주고 있다.

Avicenna는 그도 bunchum이라고 부른 coffee bean (bon 또는 bunn)의 의학적 특성들과 용도들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의 선택에 관해서는, 레몬 색의, 밝고 그리고 좋은 냄새가 나는 것이 베스트이다; 허옇거나 진한 것은 무가치하다(naught). 그것은 1차적으로 hot라고 dry하며, 다른 이들에 따르면 1차적으로 cold하다. 그것은 팔다리를 강화해주고,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며, 그 아래 습기를 말려주고, 그리고 전신에 훌륭한 냄새를 준다.

 

초창기 아랍인들은 그 콩과 콩을 낳는 나무를 bunn이라고 불렀고, 그 음료는 bunchum이라고 했다.

 

커피의 origin을 말하는 현존 최고의 문서인 『the Arabic the Abd-al-Kâdir manuscript』을 최초로 분석하고 번역한 프랑스인 동양학자 A. Galland (앙투앙 갈랑) (1646–1715), Avicenna가 그 bunn, 또는 coffee에 대해 말하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Prospero AlpiniVeslingius (Vesling)도 역시 커피에 대해 말하고 있다. Avicenna와 동시대의 위대한 또 다른 의사 Bengiazlah도 마찬가지로 coffee를 언급하고 있다; Galland가 말하는 것에 따르면, 우리는 설탕, , 그리고 초콜릿 뿐만 아니라 커피의 발견에 대해 은혜를 입은 의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Rauwolf (d. 1596)는 독일의 의사이면서 식물학자였고, 커피를 언급한 최초의 유럽인인데, 그는 1573년에 Aleppo에서 그 음료 커피를 알게 되었고, 터키인들이 커피를 마련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크기, 모양 그리고 색이 bayberry와 거의 같고, 2개의 얇은 껍데기(shells)로 둘러싸여 있는, 그들이 나에게 印度 諸國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알려준, Bunnu라고 하는 열매를 같은 물에 넣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구분되는 2개의 방에 들어 노르스름한 알갱이가 2개 들어 있고, 게다가 그 장점(virtue), 모습, 외관, 그리고 이름이 AvicennaBunchumm, 그리고 Rasis ad AlmansBunco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같은 것이라고 본다

 

아랍 의사에 의해 서술된 The Nature of the Drink Kauhi, or Coffee, and the Berry of which it is Made라는 Dr. Edward Pocoke의 번역서에는 다음과 같이 대목이 나온다:

 

BunYaman [Yemen]의 식물인데, Adar(유대력 12)에 씨를 뿌리고 자라서 Ab(5)에 수확한다. 그것의 키는 1 cunit 정도이고, 줄기 두께는 엄지 손가락 만하다. 하얀 꽃이 지면, 작은 너트 같이 생긴 베리를 남기는데, 때때로 콩 처럼 클 때도 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기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무게감이 있고 황색인 것이 최상이고, 검은 색을 띠는 것은 최하이다. 1급은 뜨겁고, 2급의 것은 dry하다. 보통 cold하고 dry하다고 보고되지만, 그렇지 않다. 쓴맛을 내는데, 쓴맛을 내는 것은 hot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되는 것들은 hot하지만, bun 그 자체는 cold할 수도 hot할 수도 있다.

   그것의 차가운 성질에 기여하는 것은 그것의 stipticknesse이다. 여름에 점막 콧물, 가래 섞인 기침, 그리고 흐르는 콧물(distillations)를 건조 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폐색을 열어주고 오줌을 나오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지금은 Kohwah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말리거나 완전히 끓이면, 혈액 분출을 누그러뜨리고, 천연두(small poxe)와 홍역(measles), 피고름에 좋다. 그러나 아찔한 두통을 유발하고(causeth), 그리고 많이 마르게 만들며, 깨어 있게 하며, 그리고 치질을 유발하고, 강한 성욕을 감소시키고, 그리고 때때로 우울하게도 한다.

   활발성(livelinesse)을 위해, 그리고 게으름(slothfulnesse)을 쫓기 위해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여타 특성들 때문에, 그것을 마신다. 육즙이 많은 고기, 피스타치오 오일, 그리고 버터와 함께 사용하도록 한다. 어떤 이들은 우유와 함께 마시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런 것은 나병(leprosy)의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다.

 

Dufour는 거래되는 상업용 커피 콩들은 Avicenna가 묘사한 bunchum (bunn)과 그리고 Rhazesbunca (bunchum)와 같은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거의 글자 그대로 Rauwolf와 일치하며, 수백 년 동안 학자들 간의 의견에 변화가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Christopher Campen은 의술의 아버지 Hippocrates가 커피를 알았고 관리했다고 생각한다.

Robinson, 의약품으로서 커피의 이른 채택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아랍 의사들의 실수였으며, 커피가 단순하고 리프레싱 해주는 음료가 아니라, 효능 있는 약으로 간주될 수 있게 한 편견을 유발했다고 비난한다.

초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들에는, 커피 나무나 그 베리로 만들어진 음료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Pierre (Pietro) Delia Valle (1586–1652), 헬렌(Helen)이 이집트에서 가져와 슬픔을 멈추게 하는 것으로 사용했다고 호메로스(Homer)가 말한 그 망우약(忘忧药, nepenthe)은 단지 커피와 와인을 섞은 것에 불과했다고 하고 있다.

 

이는 파리의 유명한 의사 M. Petit (1687년에 사망)가 반박했다. 시인 Sandys, Burton 그리고 Sir Henry Blount와 같은 후대의 몇몇 영국 저자들은 그 스파르탄(Spartan = Lacedæmonians = 북부 하이부시 블루베리의 한 품종, 미국 동북부, 캐나다, 일본의 한랭 지역에서 자라는 블루베라 종류)black broth(검은 스프)커피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George Paschius (1661-1707)1700Leipsic에서 출판된 the New Discoveries Made since the Time of the Ancients라는 그의 라틴어 논문에서, 구약성서 사무엘상 2518절에 기록된 Abigail(애버게일, 아비가일)David(다윗)에게 그의 (wrath)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준 것들 중 하나였던 볶은 곡식 알갱이 다섯 세아커피를 의미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불가타 성서(4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라틴어 역(譯) 성서)는, 헤브루어 ‘sein kali into sata polentea<wheat, roasted, or dried by fire>를 나타내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Peter Paul Rubens 作 'David Meeting Abigail'의 Photographic reproduction, J. Paul Getty Museum.

스위스 개신교 목사이자 저술가인 Pierre Étienne Louis Dumant (1759-1829)는 구약 성서의 창세기 25장 29-34절에 나오는 에서(Esau)가 그의 생득권(birthright, 장자의 권리)를 야곱에게 팔고 받은 붉은 죽(다른 사람들이 추정하는 바와 같이 렌틸 콩이 아니라) 커피였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아스(Boaz)(Ruth)에게 준 볶은 곡식 알갱이(룻기 2장 14절)가 분명히 로스트된 커피 베리들이었다고 주장한다.

Dufour는 커피에 대한 가능한 반대로서 “beans의 사용과 섭식은 지금까지는 피타고라스에 의해 금지되었다고 말하지만, 아라비아의 커피 콩은 뭔가 다른 것이라고 넌지시 말하고 있다.  

Scheuzer는 그의 Physique Sacrée에서, “터키인들과 아랍인들은 커피 콩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음료를 만들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볶은 보리 향미의 대체제로 사용한다고 만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커피 대체제가 거의 커피 그 자체만큼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멘에 커피 음료가 전파된 것은 '수피'라고 불리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일파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승려 같은 직업적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인이 속세의 샐활 속에서 신앙하라고 가르치지만, 8세기 경 속세를 버린 채 남루한 망토(수프 - 양모)만을 두루고 생활하는 최초의 수피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금욕과 청빈을 신천하며 엄격한 수행으로 육체를 통제하며 기도에 몰두하여 '忘我'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스스로 내면에 있는 '알라 신'의 정신을 느끼고자 했다. 이슬람교의 종파와는 관계없이 수피는 존재한다. 수피즘은 아랍어로 '타사우프(Tasawwuf)'라고 한다. 

 

9~10세기 경 이슬람 정통파 학자들이 왕조 전속으로 관료화된 것에 비해, 수피들은 형식주의나 정치적 부패를 비난하는 '반권력주의자'이기도 했다. 12~13세기에는 위대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개의 교단이 형성되어, 그 사상 '수피즘'이 확산되었고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지역에서도 13세기경부터 '카다리' 교단과 '샤즈리' 교단 등이 세력을 키웠다. 예맨에서 라수르 왕조 (라술왕조, Rasulid dynasty, 1229년~1454년) 하에서 정통파 학자들의 세력이 강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수피즘 보급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14세기 말 자비드가 북예맨 출신 카다리파의 수피가 적의 철퇴를 예언해 주민들을 고무시키고 승리로 이끌면서 술탄과 민중의 신뢰를 얻었고, 이후 열광적인 수피즘이 유행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피 중용이 학식자 검사로 이어져 위정자 술탄의 전횡을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라수르 왕조 멸망(1454년)을 초래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라술왕조

 

13~15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예멘의 라술왕조는 종종 예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 중 하나로 간주된다.  예멘과 인도 및 극동 지역의 상업적 연결을 육성했다. 그들은 아덴(Aden)자비드(Zabid)를 통한 홍해 통과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또한 대규모 야자 재배를 장려한 왕들이 실시한 농업 개발 프로그램으로 인해 경제도 호황을 누렸다. 에티오피아로부터 들어온 커피가 현금 작물이 되기 시작한 시대도 이 라술왕조 때이다.  

 

수피들은 수행을 위해 독특한 의식을 행하는데, 이슬람교도 사이에서는 신의 이름을 부르는 '디크르(dhikr, 창념)'라는 행위가 장려되었는데, 수피들은 목요일과 일요일 밤에 집회장에 모여 밤새도록 노래하는 독특한 디크르를 행했다. 철야로 같은 문언을 외치며 일종의 도취 상태가 되면 신의 정신에 가까와진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의식이라고 한다. 그들의 의식 중에는 이단의 경계에 가까운 것도 있어서, 이슬람교에서 오락을 위한 음악과 무용은 금하였는데도, 일부 수피들은 '사마'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의식을 진행했다. 또 아편, 대마, 담배, 약물 등을 의식에 사용하는 수피 교단까지 등장하여 전통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에티오피아와 예멘의 수피들이 디크르 의식에 사용한 음료가 바로 '카와;였다. 

 

카와는 14~15세기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지역에서 예멘에 도래했지만 처음에는 커피 이외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슬람교 범도의 백포도주를 포함하여 여러 음료들을 '카와'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예멘에 최초로 소개된 카와도 커피가 아니라 Hararr 원산의 캇트(khat)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차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5세기에 접어들어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로 만드는 카와가 발명되었다. '커피나무와 캇트는 두 가지 모두 에티오피아 발생이지만, 커피 카와는 예멘이 발상지'라는 것이다. 

 

 

예멘에 카와를 전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샤즈리 교단의 수피 '샤드힐리 Ali ibn Umar al-Shadhili, Ali bin Omar al Shadhili' (1418년 사망)이다. 그는 본래 이파트 술탄국(Sultanate of Ifat)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술탄 사아닷딘 2세 (Sa'ad ad-Din II, 통치기간 c. 1386 – c. 1403 or c. 1410)의 마음에 들어 그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이파트 술탄국은 13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 사이에 아프리카 뿔 동부 지역에 있었던 중세 수니파 이슬람 국가였다. 현재의 에티오피아 이파트 (Ifat) 셰와(Shewa) 동부 주변에서 형성되었다. Walashma 왕조가 이끄는 정치는 Zequalla에서 항구도시 Zeila까지 확장되었다. 이 술탄국은 현재 에티오피아 , 지부티 , 소말릴란드의 일부를 통치했다 .


샤드힐리는 이후 당시에는 아직 빈촌이었던 모카로 이주하여 포교활동을 하였다. 이 때문에 '모카의 수호성인' 또는 '커피 농가, 찻집주인,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게 되었고, 교단 활동이 활발했던 알제리아에서는 커피를 '샤즈리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카로 이주한 후에도 그와 이파트 사이에는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때때로 술탄이 딸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또 이파트가 멸망할 즈음에는 사아닷딘 2세의 자녀 열 명이 예멘으로 도망갔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가 확산시킨 캇트의 잎에는 각성제와 비슷한 성분이 들어 있어서 각성와 식욕억제, 행복감, 도취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캇트의 생잎은 보존이 어렵고 신선도가 떨어지면 성분도 없어져버리는 결점이 있었다. 그것이 '커피 카와'가 생겨난 계기로 작용했다. 

 

1454년경, Dhabhan (다브한)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인, Aden(아덴, 지금의 예멘)mufti (머프티, 이슬람의 율법학자, 법률학자, 회교법전 전문가)이었던 Sheik Gemaleddin Abou Muhammad Bensaid (게말레딘, 줄여서 Aldhabani)Abyssinia로의 여행 중에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되었다. 그는 Aden으로 돌아와서, 그의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는데, 그는 아비시니아에서 그 지방 사람들이 마시던 커피를 기억하고 있었다. 게말레딘은 치료제를 찾고자 사람을 보냈다. 그는 그의 병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커피의 잠을 쫓는 효과 때문에 그 음료를 데르비시들(dervishes, 극도의 금욕생활을 하는 이슬람 집단의 일원들)에게 밤에 기도를 하며 지낼 수 있고, 기타 종교 행사들을 더욱 집중하고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음료의 사용을 승인하였다.

 

캇트를 이용한 카와는 15세기 초 모카에서 예멘 각지 수피들에게 퍼져나갔다. 커피처럼 고지대에서만 자라고 신선도가 중요한 캇트를 사름들은 예멘을 산속에서 재해했다. 그러나 산속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마을 아덴은 신선한 캇트를 입수하기가 어려웠다. 아덴 수피들은 구하기 힘든 카트 대신 사용할 대체재가 없는지 어느 수피 도사에세 상담했다. 그가 바로 '무하마드 자말딘 아 자부하니'이었다. 서양에서는 '게말레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어떤 저자들은 '자브하니(al-Dhabhani)'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수도 타이즈 (Taizz) (Mocha 모카에서 북동쪽으로 90 km) 남쪽에 위치한 Dhabhan (다브한, 자부한)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젊어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홍해 연안 '아잠의 땅'에서 지내다가 이후 아덴으로 돌아와 '머프티(무후티)'라는 요직을 맡았다. 아잠(Ajam)이라는 단어는  "아랍인이 아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란의 인터메조 시대에 원주민인 페르시아 무슬림 왕조는 자신들을 지칭하기 위해 아잠(Ajam)이라는 단어와 페르시아라는 단어를 모두 사용했다. 이슬람의 정치 언어(The Political Language of Islam)에 따르면 , 이슬람 황금시대(8세기~13세기)에 '아잠(Ajam)'은 아랍인들이 "외국인" 또는 외부인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구어체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의 초기 적용에는 페르시아인, 비잔틴 그리스인 , 에티오피아인 ,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만대인, 유대인, 조지아인, 사비아인, 이집트인 및 베르베르인 을 포함하여 아랍인과 접촉 한 모든 비-아랍 민족이 포함 되었다. 홍해 연안 '아잠의 땅'이란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부 (에리트레아, 지부티, 소말리아)를 가리킨다

 

머프티란, 해당 지역의 이슬람 율법학자 중 우두머리 인물이다. 이슬람법에 정통하고 나아가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이 공직이었다. 머프티가 발표하는 공식적 견해는 '파투와'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신의 법에 비추어 올바르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법령이나 소송의 판결도 머프티가 인정할 경우 '합법'으로 간주될 만큼, 막강한 힘을 지니는 인물이었다. 게말레딘(쟈브하니)가 아덴의 머프티가 된 자세한 경위나 시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게말레딘이 예멘에 수피즘을 널리 알린 이스마일 알 자발티의 제자 중 한명이었다는 기록 자료는 있다. 

 

게말레딘은 '아잠의 땅' 사람들이 여러 식물로 카와를 만들어 마셨으며, 커피의 붉은 열매를 사용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가 아덴에서 병에 걸렸을 때, 약으로서 커피를 가져와 사용한 경험도 있었다. 커피의 각성작용을 체험한 셈이었다. 게다가, 커피 열매의 경우, 말려서 건조시키면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며 산에서 운반하기도 용이했다. 그는 '커피 열매와 종자에도 캇트와 같은 성분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카와를 만들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실제로 게말레딘이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커피로 만든 카와를 마겼고, 다른 부민들도 안심하고 이 음료를 마시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이슬람교애서 커피를 전면적으로 합법화했다기 보다는, 아덴 지방에서 '마셔도 된다는 평결'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Sheik Gemaleddin의 시대 이전에 Aden에서 커피 음료가 알려져 있었는지는 대체로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로 이미 유명했던 학식이 높은 이맘 (imam, 종교지도자,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의 지지(endorsement)는 예멘 전체에 걸쳐 그 음료에 대한 유행(vogue)을 시작시키고 그 다음에 세계의 더 먼 구석까지 퍼뜨리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the Bibliothéque Nationale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the Arabian manuscript를 통해, 낮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밤에 공부하는 법률가와 학생들 뿐만 아니라, 밤에 움직이는 여행자들, 밤에 작업을 하는 예술가와 그 외 사람들이 그 음료를 마셨고, 심지어 khat 또는 cat (catha edulis, 환각제의 일종)이라고 하는 식물의 잎파리들로 만들어진 대중적이 되고 있었던 다른 음료를 제쳐 두고 커피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Sheik Gemaleddin가 커피에 대한 최초의 선전 복음을 보급하는 작업에서 Arabia Felix(현재의 예멘)Hadramaut에서 태어난 평판이 훌륭한 의사였던 Muhammed Alhadrami의 숨은 공이 컸다. 

 

최근에 발굴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커피 기원에 대한 버전은 Omar 전설과 Gemaleddin 스토리 두 가지가 모두 한 전문적인 서양의 이야기 작가에 의해 결합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

 

15세기 중엽 무렵에, 한 가난한 아랍인이 Abyssinia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는 병들고 약해지게 되자 어떤 숲(grove) 근처에서 멈추어 섰다. 그의 곡식을 요리하기 위해 땔감을 찾다가 그는 마른 베리들로 뒤덮인 한 나무를 꺾게 되었다. 식사가 다 만들어져 먹으면서 그 여행자는 이 반쯤 타다만 베리들이 매우 향기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들을 많이 주어서 돌로 부숴보았는데, 아로마가 더욱 강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궁금해하다가 그는 우연히 물이 조금 남아 있는 다 먹은 그릇에 그 물질을 남기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거의 악취가 나던 그 물이 정화된 것이었다. 그는 그 물을 입술에 갖다 데었다. 그것은 신선했고 먹을 만 했으며, 짧은 휴식 후에 그 여행자는 그의 여행을 마칠 수 있을 정도로 원기와 에너지를 회복했다. 그 행운의 아랍인은 가능한 많이 그 베리들을 모아 Aden에 도착해서 그의 발견을 머프티에게 알려주었다. 중요 인물은 수년 동안 독극물의 영향에 시달리고 있었던 상습 아편쟁이(an inveterate opium-smoker)였다. 그는 볶아진 베리들을 우려내려고 했고, 그 나무 덕분에 그의 예전의 활력을 되찾고 기뻐했으며, 그는 그것을 아라비아어로 (force)을 의미하는 카후화(카화, cahuha)라고 불렀다.

 

 

Antonie Galland (앙투앙 갈랑)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the Arabian manuscript에 대한 분석에서, 커피의 기원에 대한 가장 신빙성 있는 설명을 제공한 바 있다. 그는, 커피 만을 다룬 최초의 인쇄된 논문의 저자였던 로마의 동양어 마론파 교수 Antoine Faustus NaironOmar와 아비시니아의 염소지기에 관련된 전설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비판했다. 갈랑은 비록 아비시니아 염소들에 의한 커피의 발견 이야기와, 승려들에게 그 베리들의 사용을 조치한 수도원장(abbot)의 이야기에 약간의 진실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지만, 역사적 사실로서는 가치 없는 믿음들이라고 말한다. “수도원의 수도원장이나 부원장(prior) 그의 제자들에 의한 커피의 발견을 존중하려고 했던 동방의 기독교인은 머프티 게말레딘이었고, 무하미드 알하드라미(Muhammid Alhadram)와 승려들은 데르비시(Dervish)이었다고 말한다. Dervish란 Darvesh, 또는 Darwīsh라고도 표기되는데, 이는 이슬람에서는 수피 교단(Sufi fraternity)의 멤버들을 가리키는 용어이거나 좁게는 물질적 빈곤을 선택하거나 수용하는, 종교적 탁발승(mendicant)를 가리킨다. 아랍어로는 faqir라고 한다.  

 

이 세부적인 것들 가운데, Jardin (자댕)은 우리가 커피의 특성들에 관한 지식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며, 커피나무는 그 원산지로부터 Yemen으로, 그리고 Mecca에까지, 나아가 Egypt로 옮겨지기 전에 Persia에까지 옮겨졌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이렇게 Aden으로 우호적으로 도입된 커피는, 어떠한 방해 없이 계속 되었다. 그 나무의 재배와 음료의 활용은 어느 정도까지는 많은 가까운 곳들로 번져갔다.

 

게말레딘이 발명한 커피 카와는 캇트와 달리 장기간 보존수송이 유리했고 이용하였다. 그 덕분에 머지 않아 예멘 전역에 알려지고 이슬람권 타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1470년~1495년에는 이슬람 성지 메카메디나의 예멘인 거주지구에서 커피 카와가 음용되면서 그들과 교류하던 마을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갔다.  

 

15세기 무렵(1470–1500), 커피는 Aden에서 데르비시들에 의해 소개된 것과 동일한 종교적 목적으로 MeccaMedina에 도달했다. 수피디크르졸음방지를 위해 마셨음은 물론 이슬람 학교 학자와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학업과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또는 단순한 기호식품으로서 커피를 이용한 것이다. 

 

1510, 커피는 EgyptGrand Cairo에 도달했는데, 그곳에서는 Yemen 출신의 데르비시들이 스스로 어떤 한 구역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종교적 기도를 하면서 밤을 보내고자 할 때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커다란 붉은 토기에 커피를 담았고, 기도를 올리면서 그것을 그들의 선임자로부터 작은 사발로 받았다. 기도의 후렴은 반박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진정한 왕, 유일신(one God)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었다. 수도사들에게 차례대로 커피를 담은 작은 잔을 건네 주었고, 수도사들 데르비시들 다음에는 그 사발은 신도들(congregation)에게 건내 졌다. 이런 식으로 커피는 예배(worship) 활동에 연관되어져 커피 없이는 어떠한 엄숙한 페스티발도 없었으며, 대중들 사이에서 커피 없이는 종교 의식이 이뤄지지 않았다”.

 

1500년경에는 kaveh kanes (커피 하우스) 즉 커피를 마시는 전문점이 Mecca에 생겨났다고 한다. 알코올을 금지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카페하네는 커피를 마시는 동시에 시민이 교류하는 마당으로 발전했다. 다만 카페하네는 기본적으로 남성만 출입하는 곳이었다(당시 여성들의 교류장소는 대중목욕탕이었다고 함). 

 

그러면서, Mecca의 주민들은 종교적 의식과 무관하게 커피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커피를 최초의 대중적 커피 하우스들인 kaveh kanes (커피 하우스)에서 홀짝거리며 마시는 세속적인 음료로 만들었다. 여기서 게으른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장기나 기타 게임들을 하고, 그 날의 소식들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으며, 그런 일들을 하면 매우 큰 추문이 났던 엄격한 Mahommedans (선지자 마호멧 추종자들)의 방식과는 반대로 노래와 춤 그리고 음악을 즐겼다. Medina에서, 그리고 Cairo에서도 역시 커피는 MeccaAden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음료가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이슬람 교도들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못했다. 

 

 

예멘에서의 커피 음용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들은 Ralph S. Hattox의 저서 『Coffee and Coffee houses: the Origins of a Social Beverage in the Medieval Near East』(University of Washington, 1985)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커피에 관한 아랍어 글을 연구했다. 그는 커피 음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발견했는데, 모두 예멘에 살고 있는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인 수피들이 밤새 기도 예배를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al-Dhabhani라는 15세기 수피 교도가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그곳에 왜 왔는지, 커피가 콩으로 씹히는 것이 아니라 음료로 준비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와 있지 않다. 아무튼 예멘으로 돌아온 뒤 몸이 안 좋아졌을 때 커피를 달라고 했더니 피로가 풀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야기에 따르면 이것이 예멘의 수피교도들에게 커피가 소개된 유래이다. 문제는 당시 예멘에 커피가 아직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멘에서 커피를 요청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90세의 한 남성은 커피 마시는 것이 1400년대 중반에 예멘에서 처음 알려졌고, 자신에게 커피를 만든 최초의 사람은 al-Dhabhani를 위해 커피를 만든 가난한 수피족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예멘에서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커피를 존경할 만한 것으로 만든 사람은 al-Dhabhani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1300년대 초 예멘의 수피 교도들은 이미 각성제인 캇트(qat) 식물의 잎으로 만든 차인 또 다른 음료를 잠에서 깨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qat는 어디에서나 자라지 않기 때문에 14세기 초 Ali ibn Umar al-Shadhili라는 수피교도가 추종자들에게 대신 커피 콩 껍질로 차를 만들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예멘에서는 커피 콩과 마찬가지로 커피 껍질을 끓여 음료로 만드는 것이 사실이며,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콩 커피가 소비되기 약 20년 전에 메카에서 껍질 커피가 소비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모든 아랍 작가들은 수피교가 1400년대 후반에 메카에 커피를 퍼뜨렸고, 그 다음에는 1500년경에 알 아자르 모스크 주변 지역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난 카이로에 커피를 퍼뜨렸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커피에는 불미스러운 의미가 모이기 시작했다. 아랍어 이름 qahwa는 "무언가 없이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잠을 자지 않고도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이전에 포도주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포도주가 음식을 대체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금지된 술과의 미약한 연관성, 도박(무슬림에게도 금지됨) 및 연예인(도덕적 타락으로 간주됨)이 커피하우스에서 흔히 발생한다는 사실, 그리고 한밤중에 교제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통치자들의 마음에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커피에 대한 일련의 단속으로 이어졌다. 1511년 메카와 1539년 카이로에서는 공공 커피하우스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커피를 멈출 수는 없었다. 1500년대 초 카이로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커피하우스 제도는 1555년경 터키에 소개되었다. 터키에서는 1633년부터 1680년대까지 커피하우스가 문을 닫았지만, 프랑스 주재 터키 대사는 커피를 프랑스 궁정에 제공하여 커피를 유행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유럽 전역의 유행을 선도한 루이 14세의 통치기간이었고, 18세기 초에는 유럽 전역에서 커피하우스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미 1690년에 커피나무를 자바에 도입했고, 그 나무는 1700년에 인도에 도달했다. 네덜란드인들은 또한 중앙 아메리카에도 커피를 도입했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카리브해와 브라질로 퍼졌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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