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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 Arts

🌺화당리 임도 유월의 마법사들

by mjcafe 2026. 6. 20.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의 깊고 아늑한 임도(林道), 오공사공님께서 정성들여 소개해주신 사진들을 보고 초록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유월의 숲길을 상상하며, 청량한 바람과 야생화의 숨결을 담은 생태적 연작 서경시(敍景詩)를 올립니다.
※ 오공사공의 티스토리 블로그 '구르미 머무는 언덕' ☞ https://ohys5151.tistory.com/

 

 

 

[연작시] 화당리 임도에서 만난 유월의 마법사들

 

 

 

1. 큰솔나리 — 활활 타오르는 유월의 심장

 

첩첩한 제천의 산자락, 외진 바위지대

솔잎 닮은 가는 잎[線形葉]들 촘촘히 엮어 숨죽이다가

유월의 태양이 꼭대기에 걸릴 제

기어이 진홍빛 불꽃으로 뒤집힌 왕관을 들어 올린다.


강렬한 빛이 내리쬐는 꽃자루[小花梗]마다

자외선을 막아낼 안토시아닌(Anthocyanin) 보랏빛 썬크림을 바르고

검은 반점 아로새긴 꽃잎 뒤로 한껏 말아 올린 채

산중의 외로운 시간들을 붉게 달구고 있다.

 

 

 

2. 메꽃 — 보릿고개의 하얀 밥줄기

 

묵은 임도 가 수풀 사이로

분홍빛 나팔 모양의 통꽃[合瓣花]이 수줍게 번진다.


외래종 나팔꽃이 이른 아침 서둘러 문을 닫을 때

한낮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독야청청 피어나는 꽃.


비록 씨앗[種子]은 맺지 못하는 고자화(鼓子花)의 슬픔일지라도

하얗고 굵은 땅속줄기[地下莖] 사방으로 뻗어내어

배고픈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서글픈 구황(救荒)의 역사,

오늘도 질긴 생명의 전분(Starch)을 땅속 깊이 익혀간다.

 

 

 

3. 큰까치수염 — 하얀 강아지 꼬리의 춤

 

초록 무성한 등산로 모퉁이,

수백 개의 하얀 별들이 모여 장대한 총상꽃차례[總狀花序]를 이룬다.


아래서 위로, 꼭대기를 향해

순서대로 천천히 피어오르는 무한화서(Indeterminate Inflorescence),

줄기 밑동에 자줏빛 붉은 물을 들이고 매끄러운 몸짓으로 서 있다.


산뜻하고 달콤한 리날로올(Linalool) 향기를 페로몬처럼 흩뿌리니

여름 장마의 공백기에 굶주린 나비와 벌들이 일제히 날아들고,

한방의 진주채(珍珠菜)로 몸을 키우며

하얀 강아지 꼬리처럼 부드럽게 유월의 바람을 흔든다.

 

 

 

 

4. 노루오줌 — 숲속 새신부의 반전

 

계곡의 축축한 물가, 노루가 목을 축이던 청정지대

안개처럼 피어오른 분홍빛 꽃차례[圓錐花序]가 눈부시다.

 

서양에선 염소 수염[Goat’s Beard]이라 부르고,

중국에선 수줍은 새신부[落新婦]라 노래하는 꽃.

 

세포마다 반짝이는 광택[Stilbe]은 부족할지라도

수천 개의 작은 아기 꽃들이 뭉쳐 곤충들의 거대한 식량 창고가 된다.


지상에선 부케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지하의 뿌리를 건드리면 노루의 지릿한 소변 내음 풍기는 반전의 생명,

뜨거운 여름날 숲의 습도를 촉촉하게 지켜내고 있다.

 

 

 

 

5. 꿀풀 — 하지(夏至)에 쓰러지는 보랏빛 전설

 

시골길 흙먼지 속에서도 꼿꼿한 꽃방망이,

꽃송이 하나씩 쏙쏙 뽑아 쪽 빨면 입안 가득 번지던 진짜 당도 (Sugar degree).


독일의 옛 약방에선 목구멍 염증을 다스리던 프루넬라 (Prunella)였고

서양의 상비약 통에선 스스로 치유하는 셀프 힐(Self-heal)로 통했던 약초.


봄과 여름의 길목, 숲의 매개충들에게 전설의 맛집이 되어주다가

하지가 지나 더위가 닥치면 미련 없이 갈색으로 말라 죽는 하고초(夏枯草)의 운명,

비록 꽃은 질지라도 기는 줄기[匍匐莖]를 뻗어 다음 봄의 보랏빛을 예비한다.

 

 

 

 

 

6. 산수국 — 마법사의 위장 전술

 

화당리 임도 그늘진 바위틈,

가장자리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커다란 백색의 장식꽃[假花].

 

씨앗을 맺지 못하는 무성화(無性花)지만 곤충을 부르는 대형 활주로가 되고,

그 중심에 이슬방울처럼 맺힌 진짜 양성화(兩性花)가 수줍게 사랑을 나눈다.


수분이 완료되면 임무를 다한 가짜 꽃잎들이

일제히 고개를 뒤집어 문을 닫는 정직함.


땅속 알루미늄(Al) 이온을 흡수하는 마법에 따라

청색에서 분홍색으로 옷을 싹싹 갈아입는 식물계의 리트머스,

유월의 산속에서 가장 정교한 비밀 연극을 상연 중이다.

 

 

 

 

7. 개망초 — 민초들의 화해와 희망


경인선 철길 따라 들어와 묵정밭을 하얗게 뒤덮던 풀,
나라가 망할 때 피었다고 

망국초(亡國草)라 불리던 서글픈 귀화식물(Naturalized Plant).


그러나 척박할수록 번성하는 계란후라이 닮은 순백의 꽃잎 속에서
우리 민초들은 부러진 희망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하얗고 솜털 같은 갓털[冠毛]이 노인의 머리[Erigeron]처럼 돋아날 때까지

모진 수탈을 견뎌내며 들판을 하얗게 위로하던 다정한 얼굴,


이제는 지나간 상처 가득한 역사와 조용히 화해(Reconciliation)의 악수를 건넨다.

 

 

 

 

8. 산달래 — 공중 요새의 이중 보험


풀숲 사이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기발한 번식의 치트키,

꽃이 피어야 할 자리에 마늘 닮은 알갱이 살눈[珠芽]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기후가 변하고 곤충이 오지 않아도 자신을 그대로 복제하여

땅으로 툭 떨어뜨려 번성하려는 영리한 무성번식(Asexual Reproduction).

 

그 단단한 복제 요새의 틈새를 비집고

연분홍빛 진짜 꽃들이 별처럼 몇 송이 삐져나와 유전자의 다양성을 꿈꾼다.

 

철저한 이중 보험의 전략으로 산자락을 지키는 영리한 생존가다.

 

 

 

 

 

9. 뱀무 — 흙 속에 묻어둔 소독약 가방


축축한 계곡 가, 뱀이 다닐 법한 그늘진 길목에

무(Radish)의 잎사귀를 닮은 초록 잎을 넓게 펼쳤다.


화사한 샛노란 꽃잎 한가운데 오이마치처럼 솟아오른 두터운 씨방[子房],

서양에선 악마와 독을 막아주는 축복받은 풀[Herb Bennet]이라 부르던 치유의 화신.

 

지하의 곰팡이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뿌리 가득 치과의 소독약 냄새를 닮은 천연 오이게놀(Eugenol)을 채워두고,

알싸한 정향(Clove)의 풍미[Geum]를 안개처럼 뿜어내며 서 있다.

 

 

 

 

10. 물레나물 — 숲속에서 돌아가는 황금 바퀴

 

오늘 여정의 끝, 태양의 조각을 주워 모은 듯한 샛노란 빛깔.

 

다섯 장의 꽃잎이 한 방향으로 비틀려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소용돌이[巴].


수백 개의 노란 수술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와

중국의 시인들은 황금 실을 가진 나비[金絲蝴蝶]라 노래했고,

서양에선 요한의 축일에 피어 우울증을 치료하는 성 요한의 풀[St. John’s Wort]이라 우러렀다.

 

큰 나무 아래 풀숲[Hypericum]에서 속은 비록 부드러운 풀[ascyron]일지라도

가장 역동적인 태극의 문양으로 유월의 바람을 저으며,

구루미 머무는 언덕에서 나그네와 유월의 향기를 나누고 있다.

 

 

 

 


BGM     

 

히사이시 조(Joe Hisaishi)

• 곡명: 어느 여름날 (One Summer's Day)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선정배경: 히사이시 조의 가장 대표적인 피아노 곡으로, 아련한 그리움과 여름날의 온기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마지막 주자이자 오늘의 엔딩 꽃인 물레나물의 황금 소용돌이가 바람을 저을 때, 그리고 시의 마지막 문장인 "구루미 머무는 언덕에서 나그네와 유월의 향기를 나누고 있다"에 도달했을 때 독자의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여운과 긴 호흡의 감동을 남기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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